매일신문

[계산논단] 더불어 살기

상생(相生)과 공생(共生)이 시대적 화두가 되어버린 듯한 세상이건만 아직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만큼 녹록지 않은 것은 없나 보다. '강남 스타일'로 일약 글로벌 스타가 된 싸이와 '절친'인 가수 김장훈의 갈등설이 한동안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동업자로서 함께 공연도 하고 노하우를 공유하던 사이에서 어느덧 결별의 당사자가 돼버렸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화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가슴 속의 앙금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동행의 끝이 아름답지 못한 것은 비단 연예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1987년 13대 대선 이래 선거 때마다 핵심 변수로 떠오른 후보 단일화 역시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13대 대선 때 양김(兩金) 단일화는 성사되지 못했으며, 15대 때 성사된 김대중'김종필 단일화는 협력의 핵심 전제조건이었던 집권 후 내각제 개헌이 무산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갔다. 16대 대선 때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이뤄졌다가 선거일 전날 깨졌다. 우리 기업과 외국기업 간의 합작 역시 대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우와 GM의 합작사 대우자동차 등 대부분의 합작사업은 중도에 갈라서거나 실패한 사례가 많다.

'동업'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대편을 생각하는 배려와 양보가 미흡하니 믿음이 생길 리 없고 이 때문에 불화가 생긴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최우선인 만큼 상대에 대한 배려나 포용이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단견이다. 협력해 파이를 키우면 각자의 몫도 늘어난다는 것은 당위가 아니라 경험이요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 즉 '착한 인성'이다. 인성의 척도가 되는 것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결국 교육의 문제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타협해 협력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혹자는 우리 국민이 선천적으로 대화와 타협보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경쟁에 익숙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일부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육을 통해 상생의 품성을 만드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먼저 정치권의 각성이 요구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정치권과 국회가 그려낸 자화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기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의 입장쯤은 개의치 않았던 정치권이 중소기업과의 상생이 미흡하다고 대기업을 몰아붙이고 있으니, 야단 맞는 쪽이나 지켜보는 국민이나 그 진정성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정치권 스스로 서로 배려하고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당 내 구 세력과 신진 세력 간 갈등이나,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정파 간 헤게모니 쟁탈전은 그래서 더 볼썽 사납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진영으로 모여든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얼마나 협력해 시너지를 내느냐는 비단 선거의 승패뿐 아니라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재계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조직이나 실패 원인을 분석해 보면 내부갈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어려움을 겪다가 급기야 법정관리를 신청한 모 그룹의 사정도 비슷하다. 겉보기에는 금융위기 때 단행한 건설사 인수나 태양광사업 진출 등 경영환경과 자체 역량을 고려치 않은 무리한 사업다각화가 침몰의 원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기존 경영층과 외부 영입인사들 간의 불화에서 틈이 생기고 불행의 싹이 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스펙과 출중한 실력으로 무장한 신예를 영입했지만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기존 인력들과의 불협화음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은 기업은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더불어 살아가는 이치는 간단하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내가 좀 더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대편 의견이 옳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면 족하다. 그렇게 해서 서로 이익의 균형점을 찾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나설 때와 멈출 때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처럼 간단한 원리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법. 각 가정의 밥상머리 교육과 유아'초등 교육부터 다시 살펴봐야 할 때다.

이재술/딜로이트안진 총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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