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라는 것은 그 나라의 언어에 대한 규칙을 정리한 것일 뿐 그것이 절대적으로 바뀔 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표준어의 정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고, 실제론 이해할 수 없는 표준어들이 많이 책정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합니다. 게시판에서 굳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지적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잘못 썼다고 해서 그 의미를 정말로 실제 의미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요?(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서)
오늘은 정말 사소한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중에서)고 한 것처럼 사실 사소한 것이 문제의 본질과 닿아 있을 때가 많다.
위 글은 포털 게시판에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르다'와 '틀리다'를 섞어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주장이다. 언어의 의미는 변하는 것이고, 언중(言衆)들이 이미 이해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이 음식의 맛은 아주 색달랐어요.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음식과도 틀렸어요."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내 생각은 당신과 아주 틀려요." TV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다. 나만 혼란스러운 것일까? 국어사전에는 분명히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로,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로 규정돼 있다. 어떤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과 옳지 않은 것이 '틀린' 것이고, 어떤 기준이 없이 서로 비교해서 같지 않은 것이 '다른' 것이다. 즉 '틀리다'는 정의를 내리는 동사이고, '다르다'는 비교하는 형용사이다. 그럼에도 최근 언어활동에서는 위의 사례처럼 그 둘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국립국어원의 조사에 따르면 '다르다'의 사용 빈도 수는 163위이고, '틀리다'는 1천837위란다. 그런데 최근에는 왜 '틀리다'는 단어가 오히려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A는 이미 틀린 것 같아.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겠어. B와 C도 실제로는 틀린 의미지." 과연 이런 표현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을까? 문맥으로 볼 때 'A는 틀린' 것이고, 'B와 C는 다른' 것이다. 'B와 C는 다른 의미지'라고 하면 의미가 더욱 명확해질 텐데 왜 '틀린 의미'라고 표현할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 언어 현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해버리면 그만일까? 분명 언어는 문화 현상을 대변한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해 사용하지 않는 것에도 문화현상이 담겨 있다. 사실상 그런 표현의 이면에는 '다른 것=틀린 것'이라는 논리가 숨겨져 있다. 언어는 사고의 프레임을 지배한다. '틀리다'는 언어를 중시하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를 반영한다. 나와 '다른' 것이라면 모두 '틀린' 것이라고 부정하는 최근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사소한 것을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깨진 유리창 법칙'을 아는가? 깨진 채로 방치되고 있는 유리창 하나가 다른 유리창을 모두 깨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현상이다. 깨진 유리창과 같은 작고 사소한 문제가 한 조직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언어 현상이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나'의 프레임에 갇혀 '너'를 무조건 부정하는 사회는 영원히 거기에 머물러 앞으로 걸어갈 동력을 잃는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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