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약에 병드는 세상] <상>손쉬운 유통경로

"마약 OOO 사려는데요"…"입금만 하면 고속버스 당일 배송"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마약을 뜻하는 은어를 검색해 찾아낸 마약 판매 사이트. 홈페이지 오른쪽에는 판매자가 실시간 채팅 창까지 띄워놓고 특정 시간대에 사이트를 찾는 이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출처=마약 거래 사이트 화면 캡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마약을 뜻하는 은어를 검색해 찾아낸 마약 판매 사이트. 홈페이지 오른쪽에는 판매자가 실시간 채팅 창까지 띄워놓고 특정 시간대에 사이트를 찾는 이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출처=마약 거래 사이트 화면 캡처)

마약도 인터넷으로 거래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인터넷 클릭만으로도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에서 제조된 마약이 국제우편을 통해 한국으로 흘러드는 등 '원스톱 마약 서비스'까지 이뤄진다고 한다.

◆마약 권하는 사회

취재진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마약을 뜻하는 '은밀한 단어'를 검색하자 필로폰과 대마초를 비롯해 마약류로 분류된 의약품들을 판매한다는 글이 수백 건 올라왔다. 이 중 '이메일로만 문의를 받는다'는 글을 보고 이메일을 보내자 3시간 뒤 홈페이지 주소를 담은 답장이 도착했다.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필로폰은 물론 마약류로 분류된 수십 가지의 약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최근 한 여성 연예인이 투약해 문제가 된 정맥주사용 수면 유도제인 '프로포폴'도 있었다. 제품마다 무게와 가격이 각각 적혀 있으며 장바구니에도 담을 수 있어 말 그대로 '마약 쇼핑몰'이었다.

홈페이지에 표시된 하루 방문객 수는 150명. 사이트 운영자는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홈페이지에 있는 실시간 대화창으로 구매자들과 상담도 했다. 채팅방에 접속해 "지금 주문하면 대구에서 언제쯤 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일반 택배는 2일, 고속(버스) 화물은 당일 배송이 가능하다. 경찰에 안 걸리려면 고속화물이 안전하니 동대구버스터미널에서 받으면 된다"고 답했다.

다른 사이트도 마찬가지. 이곳은 데이트 강간약으로 불리는 '물뽕'(GHB)을 '여성 최음제'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사이트는 '미국 FDA 승인 제품이라서 인체에 무해하고 중독성이 없다'는 거짓 광고까지 하고 있었다. 이곳 판매자는 "오늘 오후 5시에 주문을 하면 대구나 부산에서는 다음날 오후 1시까지 제품을 받을 수 있다"며 배송 속도를 자랑했다. 경찰에 적발될 우려는 없느냐는 물음에 "여태까지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속이 안 보이게 비밀 포장이 돼 있으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젊은 층이 모이는 클럽에도 대마초와 엑스터시 등 마약이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댄스강사 출신 이모(21) 씨는 지난해 대구 로데오거리 등 클럽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신종마약인 JWH-018, 일명 '스파이스'를 흡입했고, 집에 나머지 250g을 보관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취업준비생 우모(27) 씨는 최근 서울 이태원의 한 클럽에 갔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클럽 한구석에 모여 춤을 추던 백인 남성들이 단체로 코에 뭔가를 흡입하고 있었기 때문. 우 씨는 "남자 외국인이 내 귀에 대고 영어로 'drug'(마약)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남자 눈빛도 이상했고 그들이 나한테 마약을 팔려고 자꾸 권하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지난 8월 클럽에서 이 같은 마약을 투약한 현직 스노보드 선수와 공익근무요원, 작곡가 등을 붙잡았다.

◆마약, 직접 주문해 보니

마약의 사이버 밀수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관세청이 집계한 '2012년 1~8월 사이버 밀수 적발 실적 현황'을 보면 마약류 적발 금액은 7천800만원. 1억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지난해 전체 마약류 사이버 밀수액이 3천400만원, 지난해 같은 기간에 2천100만원이었던 점을 보면 가파른 증가 속도다.

취재진은 경찰에 사전 취재 협조를 구한 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한 마약 사이트에서 직접 물건을 주문했다. 비밀 게시판에는 '판매 문의' '배송 문의' 등 구매자들이 올린 글이 하루에도 10건 이상 올라왔다. 주문한 물건은 GHB. 성범죄에 주로 악용되는 각성제로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마약류로 지정됐다.

주문서를 작성하고 게시판에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자 곧장 문자 메시지가 왔다. 판매자는 "결제가 확인되면 고속버스 택배 도착 시각과 수화물 번호를 알려주겠다"며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일반 택배로 배송을 하면 판매자와 구매자를 찾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고속버스 화물은 판매자가 자기 정보를 기입하지 않고 버스로 짐을 부치면 추적이 불가능하다.

30만원을 입금하자 2시간 뒤 다시 연락이 왔다. 판매자는 고속버스 도착 시각과 물건을 찾는 곳, 운송장번호를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그가 알려준 버스 도착 시각은 오후 3시 30분. 고속버스 수화물을 찾으려면 버스 출발지와 소속 회사를 알아야 하지만 판매자는 세부 정보를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한 뒤 다시 판매자에게 연락을 했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070'으로 시작하는 인터넷 전화였다.

기자는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 수화물센터 6곳을 찾아가 버스 도착 시각과 운송장번호를 대조했다. 수화물센터 직원은 "21××× 시작하는 수화물 자체가 없다. 어디서 물건을 샀느냐"고 되물었다.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곧바로 인터넷 해당 사이트에 다시 접속했지만 홈페이지 접속이 막혀 있었다.

경찰도 이 같은 사기 사이트 때문에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마약이 거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기 사이트도 상당수여서 실제 판매자를 검거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게다가 실적에서도 필로폰 판매와 투약 사범을 검거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시간 투자 대비 효과가 없는 인터넷 수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대구경찰청 마약수사대 한 수사관은 "우리도 마약 판매 사이트 운영자를 잡으려고 수차례 돈을 부쳐봤지만 사기 사이트에 속아 실패했다. 이 중 마약을 파는 사이트도 있겠지만 '진짜 사이트'를 구별하기가 어렵다"며 "진짜 마약 사이트를 찾는다고 해도 홈페이지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대포 통장을 써 계좌 추적이 어렵다. 여기에 수사력을 집중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마약 밀수'거래 점점 지능화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마약류 사범은 9천174명. 전년도 마약류 사범이 9천732명이었던 것에 비해 5.8% 감소한 수치지만 실제 마약 중독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대구지부 조헌수 이사는 "마약을 접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도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는데다 인터넷 거래까지 이뤄져 실제 마약류 중독자는 30만 명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도 전통적인 마약 밀수가 점차 항공편과 국제우편을 이용한 밀수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한다. 필로폰은 대부분 중국에서 제조돼 한국으로 넘어온다. 과거엔 인천과 부산처럼 항구와 공항을 낀 도시를 통해 보따리상들이 밀반입하거나 사람이 몸에 숨겨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제 여행객들이 증가해 이들이 해외에서 가져오는 짐을 일일이 검색할 수 없자 여행자로 가장해 마약을 짐에 교묘하게 숨기거나 국제우편물(EMS)에 마약을 실어 보낸다는 것.

한 경찰관은 "재작년에 한 중국인 여성이 '은밀한 곳'에 필로폰 10g을 넣은 채 공항을 빠져나온다는 첩보를 받고 압수 영장을 받아 의사와 함께 수색해 검거한 적이 있다. 아무리 숨겨도 사람이 직접 운반하면 경찰에 검거될 가능성이 높다"며 "하지만 요즘처럼 출입국 여행객이 많은 상황을 악용해 소포나 우편물로 교묘하게 마약을 숨겨오면 검거가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이버 밀수뿐 아니라 갈수록 지능화되는 마약 사범들의 거래도 문제다. 국내에 들어온 마약은 중간 판매책을 통해 대구 등 전국으로 거래된다.

판매상들은 마약 투약자들과 거래할 때 경찰이 덮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 최근에는 달리는 차 안에서 필로폰을 판매하는 일명 '차치기'를 하기도 한다. 최근 대구 경찰이 마약 거래 첩보를 받고 경찰차 4대가 현장에 출동했지만 결국 검거에 실패했다.

또 공중전화 명함꽂이에 필로폰을 두고 사라지거나 배송 추적이 불가능한 고속버스 택배를 이용한다.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직접 마약을 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날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은 "갈수록 지능화하는 마약 거래 수법을 보면 경찰관이지만 혀를 내두르게 된다"며 "인터넷 거래는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기획취재팀=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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