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5시 이형민(가명'15) 군이 집에 왔다. 형민이는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축구나 농구를 하면서 친구들과 더 놀고 싶지만 오후 5시만 되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신장투석 때문이다. 형민이는 매일 네 차례 집에서 신장투석을 한다. 오후 5시, 자기 전인 10시, 새벽에 일어나서 오전 2시, 학교 가기 전 7시 등 네 번이다. 보통 신장투석은 종합병원에 가서 투석기를 통한 자동투석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형민이는 배에 미리 꽂아놓은 호스에 투석액을 넣는 방법으로 집에서 투석한다.
"병원에 데려가 투석하면 훨씬 편합니다. 하지만 자동투석을 하면 한 번에 15만원이나 들어 우리 형편에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수동으로 투석할 수밖에 없어요…."
형민이의 어머니 이미영(가명'44) 씨는 투석을 받는 형민이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치료를 가로막는 가난
형민이가 아프기 시작한 건 3살 때이던 2000년. 갑자기 몸이 부어 집 근처 소아과에 갔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고, 종합병원에서 '신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때 약물치료만 잘 받았더라면 상태가 지금처럼 나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어려운 형편에 약물치료 비용이 부담스러워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다 형민이의 병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고, 결국 7살 때 신장투석을 해야하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집에서 투석하다 보니 병원에서 자동으로 투석하는 것보다는 위험한 경우가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투석 중 심장에 물이 차 열흘 정도 입원을 해야 했다. 어머니 이 씨는 "그때 나온 병원비 1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올해는 투석하다가 복막염도 앓았다. 병원에서는 입원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씨는 하루 병원비 몇 만원이 부담스러워 통원 치료를 선택했다.
"약값은 기초생활수급자라서 대부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되는데 입원비나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은 기초생활수급자로서는 감당이 안 돼요."
◆"건강해지고 싶어요"
형민이는 키가 작다. 친구들의 키는 평균 160㎝ 안팎인데 형민이는 145㎝다. 병원에서는 신장 기능 이상 때문에 호르몬 분비에도 이상이 생긴 것 같다며 신장투석을 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성장 호르몬 주사와 함께 일찍 자라는 처방을 내렸다. 그래서 형민이는 오후 5시에 집에 돌아오면 신장투석을 받고 저녁식사를 하고 학교 숙제 등을 하다가 오후 10시가 되면 무조건 잠자리에 든다. 게다가 투석을 받으면서 지치고 몸이 약해지다 보니 일찍 잠이 들 수밖에 없다.
형민이는 어릴 때부터 글쓰기와 독서를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글짓기로 상도 곧잘 타곤 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글짓기 실력이 늘지 않는다"며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이유는 '일찍 자야 해 글 쓰고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거였다.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빌리면 집에 가져와서 읽어도 다 읽지 못하고 돌려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 친구 중 몇몇은 형민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안다. 다행인 건 형민이를 크게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친구 없이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형민이는 자신의 몸이 건강하지 않은 탓에 친구들과 오랫동안 놀지 못해 속상할 때가 많다. 형민이는 "친구들이 '메이플스토리'나 '애니팡' 같은 게임 이야기를 하면 나도 하고 싶어질 때가 많지만 집에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 게임은 휴대전화 요금이 비싸 해보질 못해 속상하다"고 말했다.
형민이의 소원은 무엇보다 아프지 않는 것이다. "먼저 아프지 않아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몸이 다 나으면 가장 하고 싶은 건 친구 집에서 놀다가 하룻밤 자고 오는 거예요. 투석 때문에 한 번도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없었거든요."
◆도움받을 곳 없는 외로운 모자
형민이의 아버지는 현재 연락이 되지 않는다. 형민이가 아픈 이후 점차 부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1년 뒤 아예 집을 나가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결국 어머니 이 씨 혼자 형민이를 키워야 했다. 이 씨는 한 달에 30만~50만원 정도의 품삯을 받고 집 근처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부품을 떼어 와 부품을 조립하거나 포장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공장이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이 일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이 씨는 "형민이 투석을 하려면 무조건 오후 5시에는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선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젠 일거리가 있어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이 씨의 건강마저 악화됐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손가락 마디가 저리기 시작하더니 팔과 다리에 쥐가 나고 힘이 빠지는 일이 잦았어요. 뭔가를 들 수도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지거나 손이 떨려요. 왜 그런지는 병원을 가 보지 못해 모릅니다."
형민이와 이 씨는 형민이 외할머니가 마련해 준 단칸방에 살고 있다. 외할머니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만 잘 찾아오지는 않는다. 이 씨에게도 형제가 있지만 다들 사정이 어려운데다 관계도 그리 좋지 않다. 그래서 명절 때 얼굴만 잠시 볼 뿐 도움을 받는 일은 없었다.
"친정어머니가 형민이 보면 '쟤는 저렇게 아파서 어떡하느냐'며 걱정 반, 원망 반 섞인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세요. 그때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형민이가 앓고 있는 신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장이식이다. 이 씨에겐 신장이식 비용도 문제지만 이식해도 무리가 없는 신장이식자를 찾는 것도 걱정이다. 다행히 형민이가 아직 어려 신장이식을 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게 희망이다. 이 씨는 "형민이가 지금은 잘 버티고 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지금의 몸 상태나마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며 "하루빨리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몸만 건강해진다면 야구선수를 하고 싶어요. 하지만 야구를 하려고 해도 몸이 이러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지금은 그냥 '몸만 건강해지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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