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드레스 코드

이야기 하나, 20여 년 전 몽골 대통령 방한을 기념한 청와대 만찬장에서였다. 각 정당 대표를 비롯한 주요 인사가 참석한 이 자리에 당시 여당 대표였던 김영삼 대표도 참석하게 되었는데, 김 대표의 수행비서진이 만찬의 드레스 코드를 잘못 이해한 바람에, 홀로 정장 차림이 아닌 턱시도를 입고 등장하고 말았다. 행사장에서 돌아오는 길, 한강다리를 달리던 차를 세우고는 김 대표가 비서에게 "뛰어 내려라"했다는 얘기는 아직도 종종 회자된다.

이야기 둘, 2003년 유시민 의원이 재보선에서 당선된 후 의원 선서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등단했을 때였다. 베이지색 바지에 남색 재킷을 걸친 그의 모습에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케 하는 행동이라며 수십 명의 의원이 퇴장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이는 방송토론의 주제로까지 이어지며 복장문제의 적절성에 대해 곳곳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국내 한 특급호텔에서 한복은 드레스 코드 상 맞지 않아 입장을 삼가라고 했다 하여 세인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이에 대해 해명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니 아직도 우리의 복장에 대한 이해와 규범의 확립은 현재진행형으로 봐야 할 듯하다.

드레스 코드란 특정한 장소나 행사에서 필요한 의상 규정이다. 다시 말해, 모임이나 조직에서 동질감과 유대관계를 맺기 위해 무언의 합의 속에서 시작된 복장 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패션의 기본은 TPO, 즉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sion)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TPO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이 모임과 행사의 분위기를 이끌 뿐 아니라 자기 연출에서 오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옷이 사람의 행동을 규정한다'는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입증된다. 청바지 차림일 때는 잔디밭이든 계단이든 걸터앉아도 자연스럽지만 정장차림일 때엔 몸가짐부터 달라지곤 한다. 평소에는 빈틈없이 반듯하던 직장인도 예비군복만 걸치는 순간 걸음걸이부터 느슨해지지 않던가.

다양한 상황 하에서 요구되는 드레스 코드에 매번 적중시키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의 암묵적인 기준이나 사회적 합의를 지켜주려는 노력 그 자체가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다. 옷은 단순히 껍데기에 그치지 않고 사람의 진심을 전달하는 수단이기에.

조자영<한국패션산업연구원 패션콘텐츠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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