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일본은 농민과 소상공인 그리고 소비자까지 살리는 지역소비운동의 발상지다. 대형마트에 대한 강한 규제와 함께 지역 업체들의 협동조합운동, 지역 농산물을 이용하는 로컬푸드 운동이 활성화돼 있다. 정책적으로 지역소비를 통한 지역경제 살리기를 지원하고 경제주체들도 지역 상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는 '착한 소비'가 자리 잡은 유럽과 일본의 지역소비운동을 살펴본다.
프랑스 파리 13지구 주택가엔 토요일이면 점포가 인도 양쪽으로 빼곡히 선다. 채소와 생선, 식육점 등 각종 신선식품과 공산품을 판매하는 노점 시장에는 이른 시각부터 활기가 넘친다.
반면 이곳에서 1㎞가량 떨어진 대형마트 '까르푸 시티' 매장은 한산했다. 장바구니를 끌고 시장에 나온 쟌느 뒤마 씨는 "파리 시민들이 시장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파리 도심에는 시장만큼 다양한 물건을 갖춘 대형마트가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까르푸 본사가 있는 프랑스. 하지만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는 정작 까르푸를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의 대형마트 규제정책 때문이다.
프랑스는 중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해 강력한 대형마트 규제 정책을 펴는 대표적 나라다. 최근 국내에서도 대형마트의 휴일 의무휴업을 두고 지자체들과 대형마트 간 법정공방이 벌어지면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위한 프랑스의 정책이 주목받고 있다.
◆일요일 영업금지 등 강력 규제
프랑스는 1970년대부터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1973년에 제정된 르와이에법은 인구 4만 명 이하인 도시에서는 1천㎡(300여 평) 이상, 4만 명 이상인 도시에서는 1천500㎡(450여 평) 이상인 상업시설을 설치할 때 허가를 받도록 했다.
1996년에는 한층 규제를 강화한 라파랭법을 도입했다. 매장면적 300㎡(90평) 이상의 규모를 가진 상업시설은 반드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6천㎡(1천800여 평) 이상 시설을 설치할 때는 공청회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라파랭법의 효과는 파리 도심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파리에서는 대형마트를 한 곳도 찾아볼 수 없다. 당국에서 소상공인들과 시장을 살리기 위해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로 치면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해당하는 조금 큰 슈퍼마켓만 들어서 있다.
프랑스는 노동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일을 제한하기도 한다. 근로자가 일주일에 6일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하고, 일요일에는 반드시 휴식을 제공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일요일에는 대부분의 대형판매점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가족끼리 일하는 영세 자영업자들만이 일요일에 장사를 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대형유통업체 오샹(Auchan)이 일요일 영업을 허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일요일 휴식을 보장하는 노동법 때문에 무산됐다. 법원은 일요일 영업을 금지하고 만일 휴일 영업을 하면 10만유로(약 1억4천만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시민들로 북적이는 시장
까르푸, 제앙 등의 대형마트는 파리 도심에서 차로 20~30분 이상 떨어진 외곽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이마저도 오후 9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직장을 가진 파리 시민이 평일에 이곳까지 쇼핑을 하러 가기엔 빠듯하다. 게다가 일요일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파리 외곽의 까르푸에 손님이 많을 때는 토요일 하루뿐이다.
파리 시민 알랭 르윈 씨는 "오후 6시 회사 업무를 마치고 가장 가까운 까르푸까지 가려면 차로 거의 1시간이 걸린다"며 "이 때문에 식료품은 일주일에 두 번 서는 집 근처 시장에서 구입하고 전자제품 등을 살 때만 토요일에 까르푸에 들른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쇼핑이 편리하지 않다 보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집 근처 상점을 이용하거나 시내 곳곳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에서 식료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신선도가 생명인 식료품의 경우 소상공인들이 판매하는 상점뿐 아니라 농민장터, 소비자참여농업(CSA)도 활성화돼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소비자참여농업인 아마프(AMAP)는 근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계약을 맺고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생산자가 구성한 농산물 바구니를 공급한다. 2000년대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아마프는 1천여 개가 넘는다. 농산물 경작에 필요한 경비를 반영해 미리 농산물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생산자는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소비자들은 건강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제공받는다.
2년 전부터 아마프를 이용하고 있다는 올리비에 로페즈 씨는 "아마프에 가입한 이후에는 대형유통업체에서 식료품을 구입할 일이 거의 없다"며 "따져보면 가격도 유기농 매장보다 20~30%가량 저렴해 신선한 채소를 원하는 파리시민들은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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