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8대 대선, 지방은 없다] <2>지방분권 공약 가능할까

절박한 화두, 누구도 나서지 않아

이달 9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지방분권개헌 국민행동' 창립대회. 중앙집권체제 폐해 극복을 기치로 내걸고 학계'노동계'지자체'언론계 등 24개 단체가 뭉쳤지만 다소 맥이 풀렸다. 여야의 유력 대선 후보들이 모두 불참했기 때문이었다. 2002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한나라당 이회창'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지방분권 추진을 다짐하는 대(對)국민 협약서에 서명했던 열기는 찾기 힘들었다. 인혁당'정수장학회'북방한계선(NLL) 논란 등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지향적 어젠다인 지방분권이 좌초될 위기라는 공감대가 참가자들 사이에 형성됐다.

2012년 지방분권론자들이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는 핵심 사항은 분권형 개헌이다. 구체적으로는 지역대표형 상원(上院) 설치, 광역지방의회에 자치법률 제정권 부여 등이다. 연계 목표로는 정당공천제 폐지(정치 분권), 지방세 확대(재정 분권), 정부 내 분권추진기구 설치(행정 분권)가 꼽힌다. 이는 정치권에서 주로 논의돼온 '분권형 중임제 개헌'과는 다른 주장이다.

분권형 개헌 추진은 10년 전 제1기 지방분권운동이 '미완의 완성'이란 자성(自省)에서 출발한다. 치열했던 노력으로 2003년 연말 '지방분권특별법' '지역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촉진법'의 제정이 이뤄졌지만 실질적 분권은 답보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의 이창용 상임 실행위원장은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지방분권은 중앙 권력에 의해 왜곡되는 바람에 더 이상 진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치 분권은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 정치권, 행정 분권과 재정 분권은 관료들에 의해 무력화되고 말았다는 설명이다. 지방분권론자들은 여기에다 수도권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중앙 언론을 더해 '지방분권 3대 걸림돌'이라 비판하고 있다.

지방분권이라는 화두가 정당성과 절박성을 갖고 있음에도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대선 후보들의 국가 백년대계에 대한 철학 부재 탓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방을 국가 발전의 한 축이 아니라 단순한 표밭으로만 인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새누리당 박근혜'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아직까지 분권형 개헌에 대해 입장을 직접 밝히지 않았다. 다만 각 후보 측의 캠프에서는 최근 지방분권단체인 '균형발전지방분권 전국연대'의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통해 어느 정도 의지를 드러냈다.

박 후보 측은 "집권하면 헌법에 '우리나라는 지방분권 국가'라는 점을 천명하고 중앙'지방의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양원제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 측은 개헌에 찬성하면서도 "지방분권형 개헌과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국민적 합의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추진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 후보는 "좀 더 검토하고 논의한 뒤 조만간 공식 답변서를 보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측 '균형발전을 위한 분권과 혁신 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분권형 개헌론이 다른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어 후보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며 "안 후보도 조만간 생각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분권의 실현은 '전쟁'에 비유된다. 결국 권력을 나누는 일인 만큼 투쟁 없이는 쟁취하기 힘들다. 시민사회단체들뿐 아니라 지방정부'의회까지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달 11일에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총회를 열고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을 요구했고, 전국 시'도의회 운영위원장협의회는 17일 '지방분권 촉구를 위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대선 후보들의 의지, 관련 단체의 압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인식 변화라는 게 지방분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비판적인 사고와 무관심에서 탈피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태 대구시의회 지방분권특별위원장은 "분권헌법 개정, 자치역량 강화, 지방자치제도 개선 등을 두고 관련 단체들과 협의하고 있다"며 "지역 주민의 눈높이에 맞춘 생활형 분권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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