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수막 사모곡' 어머니, 태풍 산바 때 시신으로 돌아와

치매 실종, 가족만 뛰었다

치매를 앓는 상태에서 실종된 어머니를 찾으려는 3남매의 지극한 효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숨진 채 발견됐다. 안타까운 사연을 상세하게 보도한 매일신문 7월 10일자 6면.
치매를 앓는 상태에서 실종된 어머니를 찾으려는 3남매의 지극한 효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숨진 채 발견됐다. 안타까운 사연을 상세하게 보도한 매일신문 7월 10일자 6면.

치매를 앓는 상태에서 실종된 어머니를 찾는 3남매의 애끊는 사모곡(思母曲'본지 7월 10일자 6면 보도)의 당사자인 어머니 이모(80) 씨가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씨의 자녀들이 '어머니를 찾도록 도와달라'는 플래카드를 대구시내 곳곳에 내걸었던 터라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8년 전부터 치매를 앓았던 이 씨는 지난 5월 25일 대구 수성구 두산동의 한 대형마트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딸과 함께 쇼핑에 나섰다 실종된 것이었다. 이 씨의 자녀들은 이 씨의 고향인 경주 안강과 학창시절을 보낸 포항에도 전단지와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신문에도 '어머니를 찾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의 광고를 수차례 실었다. 본지에도 이들 3남매가 어머니를 찾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기사로 소개돼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씨가 발견된 곳은 대구 북구 대현동 칠성교 아래. 발견된 때는 지난 9월 17일이었다. 태풍 '산바' 피해현장을 점검하던 대구시설관리공단 직원 L(56) 씨가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당시 '칠성교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경찰로부터 들은 자녀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구 북부경찰서로 달려갔다. 그러나 경찰은 "시신의 훼손이 심해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육안으로 판단했을 때는 어머니 이 씨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혈육의 정은 끈끈했다. 자녀들은 직감적으로 어머니의 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결국 자녀들은 유전자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 시신의 뼛조각에서 DNA를 추출해 자녀들의 DNA와 비교했다. 결과는 지난달 30일 통보됐다. 'DNA 99.9% 일치'. 시신이 발견된 지 40여 일 만이었다.

유족들은 그나마 어머니의 시신이라도 찾아 다행이라는 심정이다. 수개월간 어머니와 비슷한 사람을 봤다고 하는 신고도 수백 건이었다. 대구경북을 샅샅이 훑다시피 했다. 숨진 이 씨의 큰아들은 "우리 남매 모두 상심이 크다. 어머니를 지켜 드리지 못해 가슴이 아프지만 시신이나마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고 했다. 치매 노인 실종 문제에 국가의 관심이 지독히 낮다는 것이었다. 유족들은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경찰이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앞으로 경찰이 실종 노인들을 찾을 때 정보를 이용하는 체계나 노하우를 많이 정비해 어머니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