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의 한 중학교 1학년생 A군은 초등학교 시절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또래 친구들이 어머니가 중국인인 A군을 '중국인은 더럽다'고 놀려 대는 바람에 등굣길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던 것.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히 성적은 반에서 바닥을 맴돌았다. "아이들이 툭툭 건드리며 '짱깨'라고 비웃을 때는 정말 학교에 있기 싫었어요. 엄마가 중국인인 게 무슨 잘못이라고…. 부모님이 일 때문에 바쁘시다 보니 제 기분을 일일이 말씀드리고 상의하기도 어려웠어요. 가까운 친구 하나가 저와 함께 다녀주지 않았더라면 학교에 제대로 못 다녔을 거예요."
#30대 초반인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B씨는 남편과 경북 의성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10년 가까이 한국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 날씨와 말, 문화는 여전히 낯설다. 나이가 많고 무뚝뚝한 남편에게 정을 붙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B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도통 말이 없는 초등학교 1학년 딸과 교감(交感)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B씨는 한국의 학교생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딸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해서 물어봐도 대답을 잘 안 해요. 혹시 학교에서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고 놀려서 그런 건지 걱정되지만 이야기를 안 하니까요. 공부를 도와주려 해도 한국 교과서를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남편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는데 아이 학교생활에 관심이 별로 없으니…."
'다문화 학생 1%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지만 다문화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다문화 학생과 학부모는 한국말,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편견 어린 시선과 차별이다.
중국 한족 출신 여성과 연애결혼을 해 중 1, 초교 6학년인 딸 둘과 초교 5학년인 아들 등 세 자녀를 둔 이모(44'포항시 북구) 씨. 결혼 당시 주변으로부터 '뭐가 부족해 중국 여자와 결혼하느냐'는 말을 들었다는 그는 자신의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 씨는 "아이들이 친구들로부터 엄마 이름이 이상하다고 놀림을 받고, 역사 시간 때 고구려에 대해 배운 뒤 '당나라 놈'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어린 나이여선지 그런 말에 더 상처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대구교대 다문화교육센터가 경북 다문화 학생들을 초청해 연 '아동 자존감 증진 캠프'에서도 비슷한 경험담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중국 조선족 출신인 한 초등학생은 "매일 씻는데도 주변 아이들이 지저분하다고 놀린다. 때로는 조선족 억양을 과장해 흉내 내면서 약을 올린다"며 "나는 힘도 없도 공부도 못 하니 만날 당하기만 한다"고 울먹였다.
캠프에 참가한 대구다문화연구회 김응춘(월암중) 교사는 "공부를 잘하거나 외모에서 표시가 나지 않는 아이들은 놀림감이 되지 않으려고 어머니가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걸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북의 한 다문화 담당 교사는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어머니를 둔 경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다문화가정 자녀라고 밝히는 사례가 드물다"며 "외모가 비슷하면 학교에서 다문화가정 자녀인지 모르는 사례도 있어 실제 교육 당국의 통계에 안 잡히는 학생들도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김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다문화 학생들 중에는 학교생활이 힘들어도 부모님께 속속들이 얘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결혼이주여성과 초교생 자녀들이 함께하는 '다문화가족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조만간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교육 당국의 다문화 학생 교육에 대한 관심도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최근 민주통합당 인재근 의원이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경북 다문화 가정 자녀의 취학률은 74.91%에 그쳤다. 전국 평균 다문화 가정 자녀의 취학률 66.86%에 비해서는 높지만 우리나라 전체 취학률인 99.6%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인 의원은 "다문화 가정 자녀의 취학률을 정부에서 파악하지도 않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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