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달러·엔 유로화 트리플 약세…원 高 비명

1달러=1090원 '최저치' 수출기업 줄줄이 환차손

환율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원'달러 환율 뿐 아니라 원'엔화 환율, 원'유로화 환율까지 동반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의 경우 지난달 25일 1098.2원으로 거래가 마감되면서 1100선이 붕괴된 후 26일 1097원, 29일 1095.8원, 30일 1091.5원, 31일 1090.7원으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100원 밑으로 떨어진(종가 기준) 것은 지난해 9월 9일(1077.30원) 이후 13개월여 만이다. 원'엔화 환율도 지난달 22일 1388.1원으로 거래가 끝난 뒤 24일 1382.8원, 29일 1375.4원, 30일 1373.8원, 31일 1370.7원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또 원'유로화 환율도 지난달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1464.46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하향 곡선을 그으며 31일 1416.35원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달러'엔'유로화의 트리플 약세 현상을 원화 강세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원인

환율 하락은 원화 가치의 상승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원화 강세의 주된 원인으로 선진국의 통화정책 완화를 꼽고 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앞다퉈 돈을 푼 것이 원화 강세를 촉발시켰다는 것. 유럽중앙은행은 9월 6일 유로존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뒤에는 미국연방준비제도가 매달 4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담보부증권을 사들이는 3차 양적완화 계획을 발표하며 선진국발 환율전쟁에 불을 지폈다. 유럽연합과 미국의 통화 공세로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환율 방어에 비상이 걸린 일본도 통화전쟁에 동참했다. 9월 19일 일본은행은 자산매입기금을 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늘리는 양적완화 조치를 내놨다.

유럽연합'미국'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에 힙입어 국제 사회에 달러'유로화'엔화가 넘쳐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돈 가치가 올라갔다. 여기에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잇딴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원화 강세를 부추기는 촉매가 됐다. 또 수출을 통해 외화가 꾸준히 국내로 영입된 것도 원화 가치를 끌어 올리는데 한몫을 했다.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서도 올 8월까지 경상수지 흑자 누적액은 223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상수지 등 대외건전성이 양호해 원화 강세가 나타난 것으로 해석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정감사에 출석해 선진국의 양적 완화 조치로 풍부해진 국제 유동성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 얼마까지 떨어질까

현재 원화 강세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환율이 얼마까지 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천원대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분석도 제기되고 있지만 내년까지 원'달러 환율이 1천원대 중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LG경제연구원과 외국계 투자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는 내년 원'달러 환율을 1040원 선, 우리투자증권은 1030원~1050원 선으로 예상했다. 현대증권은 원'달러 환율이 내년에 1050원 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경제 손익 계산서

한국은행은 환율이 10% 하락하면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4%포인트(p)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환율이 하락하면 한국경제 성장의 버팀목인 수출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2002년 이후 10년간 수출의 성장 기여율이 50%를 넘을 정도로 수출 의존도가 높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아래는 떨어지면 수출기업의 실적 악화와 신용등급 하락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율 하락이 경제에 악영향만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수입물가 하락이 소비자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내수를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올 7월 '물가보고서'를 통해 환율 하락폭이 1%p 커지면 6~9개월 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12%p 낮아진다고 추정했다.

문제는 환율 하락 시점이다. 국내 경기가 워낙 침체되어 환율 하락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정책실장은 "가계의 소비 여력이 많이 약해져 있어 환율 하락에 따른 내수 활성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