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문화 학생 1% 시대] <하> 다문화 가정이 부르는 희망가

"한국말·러시아말 모두 잘해 인기" "국토순례 조상 발자취 탐방"

다문화가정 학생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이들과 외국 출신인 이들의 어머니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26일 구미다문화교육지원센터에서 한국 전통에 대해 배우고 있는 다문화가정 동아리
다문화가정 학생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이들과 외국 출신인 이들의 어머니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26일 구미다문화교육지원센터에서 한국 전통에 대해 배우고 있는 다문화가정 동아리 '구미다누리' 회원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다문화가정 학생이 급속히 늘고 있는데도 정작 이들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이 여전하다면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교육당국이 다문화가정 동아리 지원 등 정책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현실을 따라잡기에는 부족하다. 교육계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문화가정 어머니들, '아이를 위해서 한국을 배우자'

지난달 26일 기자가 방문한 구미다문화교육지원센터. 결혼이주여성 5명이 한복 차림의 강사 김경옥 씨 주위에 둘러앉았다. 김 씨가 전래동화 '콩쥐팥쥐전'을 구성지게 읽자 다들 바짝 귀를 기울였다.

김 씨가 콩쥐와 고을 사또의 아들을 이어준 것이라며 준비해 온 꽃신을 내어 보였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따냐(31) 씨가 선뜻 나서 신어 보더니 외쳤다. "어라? 신발이 딱 맞아! 나 콩쥐인가 봐." 파란 눈, 노란 머리인 그의 말에 모두들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모임은 올 8월 조직돼 매월 1, 2차례 모이는 구미의 다문화가정 동아리인 '구미다누리'. 16명의 결혼이주여성들과 다문화 교육에 관심이 많은 일반 학부모들이 회원이다.

한국 생활 9년차인 따냐 씨는 이 모임에 나오면서 아이 교육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따냐 씨는 여느 한국 아주머니 못지않게 연신 자식 자랑을 했다. "초등 2학년인 아들은 한국인 친구들과도 잘 놀아요. 한국말과 러시아말 모두 잘해 인기도 많고. 우리 딸도 예쁘죠? 12개월 됐어요."

중국 조선족 출신인 차성실(41) 씨는 이날 모임에 처음 나왔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지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곳에 오니 마음이 편안하네요. 3살 난 딸도 또래 친구가 없는데 이곳에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모임의 회장은 초교 2학년인 딸을 둔 일반 가정의 서교숙(36'여) 씨다. 그는 집 주위에 다문화가정 이웃이 많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며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은 일일겁니다. 서로 어려움을 나누는 건 기분 좋은 일 아닌가요?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어 제게도 도움이 많이 돼요."

구미다문화교육지원센터는 앞으로 '구미다누리'와 함께 각국의 전통요리 체험, 공연 관람, 다문화 이해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구미교육지원청 정미숙 장학사는 "다문화와 일반 가정이 함께 어울리다 보면 외국 출신 어머니들이 한국 생활에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자녀 교육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문화가정 학생'학부모들에게 귀 기울여라

경북도교육청은 다문화가정 학생 1% 시대를 앞두고 다문화 교육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울동아리 사업'은 다문화가정과 지역 주민들로 동아리 조직을 유도해 한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지난해 도교육청은 38개 동아리에 1억9천만원, 올해 65개 동아리에 3억1천500만원을 지원했다.

올해 처음 시작한 '국토순례'는 다문화가정 학생과 일반 학생이 함께 우리 조상의 발자취를 찾아보면서 서로 소통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있다. 올 8월 초 3박 4일 동안 초'중'고교생 137명이 통일전망대와 대관령, 공주와 부여, 태백 고생대 자연사박물관 등을 돌아봤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이주여성 어머니의 고국을 방문, 어머니와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도록 '부모 나라 문화 탐방'도 진행하고 있다. 첫 발걸음을 뗀 지난해에는 217명, 올해는 183명이 어머니의 나라에 다녀왔다.

전문가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한 다문화 정책의 개발을 강조했다. 영남대 다문화교육연구원 김민정 팀장은 "연구기관, 지자체, 학교, 교육청이 만나는 정책운영협의회가 있지만 1년에 두 차례 열릴 뿐이어서 현장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했다.

2009년 발족한 (사)포항다문화가족의 이원요 회장은 "다문화가정의 어머니들도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알고 있지만 언어, 경제적 형편 등의 이유로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문화가정 학생을 위한 방과후 공부방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구교육대 다문화교육센터 성용구 센터장은 "초교 저학년일수록 어머니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은데 어머니가 한국말을 잘 못하면 아이도 자연스레 영향을 받게 되고 결국 학습 부진으로 이어진다"며 "차츰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학생을 위해 초교에 언어치료'발달 전문가를 둬야 한다"고 했다.

교사들이 먼저 다문화 교육에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올 8월 대구경북의 다문화 교육을 연구하기 위해 초'중학교 교사 30여 명과 함께 '대구다문화연구회'를 만든 김응춘(월암중) 교사는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관심이 없으면 자기가 맡은 학급에 다문화가정 학생이 있는 줄도 모르기 십상"이라며 "교사가 다문화가정 학생을 챙기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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