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으로 로컬푸드를 권장하고, 소비자도 로컬푸드를 즐기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이탈리아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스테파노 콘티(48) 씨가 운영하는 식료품점 'conti'(콘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식생활에 꼭 필요한 품질 좋은 올리브유 등 각종 가공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스테파노 씨는 할아버지대에서부터 수십 년간 이어온 가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 자부심 중 하나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건이 피렌체가 소속된 토스카나 주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는 점이다. 스테파노 씨가 추천하는 졸피니라는 품종의 콩에는 'from Reggello'라고 표기가 돼 있었다. 피렌체에서 20㎞가량 떨어진 토스카나주의 레젤로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콩이다. 스테파노 씨는 "우리 가게뿐 아니라 시장 안에 있는 수백 개의 상점에서 토스카나산이 아닌 제품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로컬푸드는 자연스러운 생활문화"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는 지역 내 생산과 소비를 위해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지자체다. 지자체뿐 아니라 기업가, 상인, 소비자 등 각 경제주체들은 지역 제품 소비가 몸에 배어 있다. 신선식품을 포함해 가공식품과 생수까지도 로컬푸드를 이용하는 곳이 토스카나다.
◆농식품 유통단계 축소(short food chain) 정책
토스카나 주 정부는 2007년 5월 'short food chain'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토스카나 농림식품 지역현신청(ARSIA)이 주관하는 이 사업은 지역에서 생산된 농식품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이 사업을 통해 농식품의 유통단계를 축소하고 지역 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들이 생겨났다. 주 곳곳에 농민장터를 개설됐고, 농가의 절반 이상인 2만5천여 개의 농민직판장을 운영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게 됐다.
또 소비자가 회원으로 등록하면 일정 금액의 선금을 내고 농식품을 직접 받아먹을 수 있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공동체 지원 농업)는 2000년대 초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해 100개에 가까운 CSA 그룹이 형성돼 있다.
로컬푸드 사업 활성화에는 토스카나 주 정부의 노력이 컸다. 주 정부는 농민장터와 직판장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지역 농식품을 학교 및 공공기관 급식에 공급하도록 정했다.
또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로컬푸드를 전시'판매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CSA를 비영리 결사체로 규정, 면세혜택을 주는 정책도 만들었다.
토스카나 농림식품 지역현신청의 엔리코 파비 연구원은 "로컬푸드 사업은 자자체와 지역 대학 및 연구기관, 경제주체들 간 소통과 노력이 있어야만 활성화될 수 있다"며 "토스카나의 경우 단축된 유통과정 덕분에 농민들은 정당한 값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소비자들은 신선하고 품질 좋은 농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슬로시티가 만들어낸 기적
토스카나 내에서도 끼안티는 지역 내 소비가 가장 활성화된 곳 중 하나다. 끼안티는 와인 산지로 유명하며 자연 풍광이 수려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만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맥도날드 등 프랜차이즈점을 찾아볼 수 없다.
그중에서도 작은 마을인 그레베 인 끼안티(Greve in Chiantti)는 세계 최초의 슬로시티다. 패스트푸드보다는 슬로푸드를 즐기고 빠른 교통수단보다는 걷기를 선호하는 슬로시티 그레베 인 끼안티는 로컬푸드 이용률이 100%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곳에서 3대째 이어져온 식당 '다리오'는 로컬푸드만을 이용해 음식을 만든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햄버거는 흔히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아닌 끼안티 산 소고기를 다져서 구워낸 슬로푸드다. 식당 주인 마르케노 다리오 씨는 "그레베 인 끼안티 식당들은 끼안티 안에서 생산된 농식품을 사용한다"며 "그것이 우리 지역 농민들을 살리는 길이고 손님들에게도 질 좋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0년부터 그레베 인 끼안티의 시장이었던 파올로 사투르니니가 시작한 슬로 운동은 마을 경제를 살려냈고 고용률 100%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슬로시티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도 늘어났고 주민 삶의 질은 더욱 향상됐다.
주민 마리아 모레티 씨는 "우리 마을에는 농장에도 식당에도 일자리가 넘쳐난다"며 "그래서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로마나 밀라노 같은 대도시로 떠나지 않고도 충분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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