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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 이는 독립잡지

대구 남구 대명동 계명문화대 부근에 있는 독립잡지 전문 서점
대구 남구 대명동 계명문화대 부근에 있는 독립잡지 전문 서점 '폴락'에서 손님들이 다양한 독립잡지를 살펴보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브래킷'이라는 독립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대구 거주 외국인들. 제스 힌쇼, 그레그 레이책, 크리스 코트 씨(왼쪽부터). 그레그 레이책 제공
지역 대학생들이 모여 만드는 대학생 문화 잡지
지역 대학생들이 모여 만드는 대학생 문화 잡지 '모디'.
20대들의 고민을 녹인 기발한 질문들을 수록한 질문 잡지
20대들의 고민을 녹인 기발한 질문들을 수록한 질문 잡지 '헤드에이크'.

'출판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넘어 '출판의 욕구'를 발산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독립잡지'를 제작하는 사람들이다. '독립영화'나 '독립음악'처럼 독립잡지도 기성잡지의 틀을 탈피해 제작자의 자유로운 발상을 녹여내는 매체다.

최근 우리 지역에도 독립잡지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 즐겨 읽으면서 독립잡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로 20, 30대 젊은이들이다. 희한한 일이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디지털 매체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젊은이들이 잡지라는 아날로그 매체에 푹 빠져들고 있다니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독립잡지는 디지털 매체가 다루지 못하는 정보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대안' 매체였다. 그러면서 기존 인쇄매체의 위기를 타개할 힌트도 담고 있었다. '오래된 미래' 혹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표방하는 독립잡지 문화를 살펴봤다.

◆기발한 발상 담는 인쇄매체, 독립잡지

독립잡지는 1990년대 후반 국내에 첫 등장했다. 서울 홍익대 주변에서 작가들이 아트북, 프로젝트북 등 '작품집' 형식으로 제작하던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 퍼지면서 점점 잡지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0년 이후부터 본격적인 '붐'을 타기 시작했다. 초기에 나온 아트북부터 에세이, 사진집, 잡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 제작자들이 독립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것.

독립잡지는 형식만큼 콘텐츠도 다양하다. 다양함을 넘어 기발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기성잡지의 틀을 탈피한다'는 독립잡지의 취지 그대로 젊은 제작자들의 자유로운 발상이 그대로 녹아든다.

먼저 독자 분류부터 기발하다. 기존 미디어가 감히 분류하지 못하는 특정 독자층을 타깃으로 하는 것. 지난 1월 첫 발행된 '월간 잉여'는 청년 백수와 백조(여성 백수를 가리키는 말)를 타깃으로 한 독립잡지다. '잉여'란 직업을 갖지 못하고 사회의 '나머지'가 돼버린 청년들을 가리키는 단어. 발행인은 역시 취업준비생인 최서윤(25'여) 씨다. 2년간 취업문을 두드리며 번번이 실패를 맛본 그는 자신처럼 짧지 않은 잉여 기간을 겪는 다른 청년들과 소통하기 위한 잡지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 잉여들을 위한 취미생활 추천, 고민스럽지만 유머러스함도 잃지 않는 에세이 등의 콘텐츠를 잡지에 담았고, 최근 '대선 후보들이 알아야 할 청년 현실'을 특집 콘텐츠로 담은 여덟 번째 호를 냈다.

이외에도 '줄라이 컴 쉬 윌'(July Come She Will)은 '30대 미혼 여성들을 위한 라이프 멘토 매거진'을 표방한다. 발행인은 자신도 노처녀라고 밝혔다. '사표'는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은 사회 초년병 직장인들의 비애를 유쾌하게 표현한 에세이를 수록한 잡지다. 실제로 발행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잡지를 냈다고 밝혔다.

콘텐츠 선정도 기발하다. '헤드에이크'는 국내 최초의 '질문 잡지'를 표방한다. 잡지에는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20대의 고민에 독자들이 직접 작성한 답안을 싣는다'고 적혀 있다. 잡지를 살펴보니 '졸업 후 뭐하세요?' '당신이 일으키고 싶은 혁명은?' 등 재미난 질문들로 가득했다. '아토피'는 아토피 예방 및 치료법이나 관련 사연을 수록하고, 부록으로 수제 아토피 방지 비누를 주기도 한다.

종이 한 장으로도 독립잡지 제작이 가능하다. '바로그찌라시'나 '월간 소소' 등은 종이 한 장에 가벼운 메모나 에세이를 담아 발행해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종이 한 장짜리 무가지다.

이렇듯 젊은이들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날것 그대로 실리는 독립잡지의 국내 시장 규모는 정확히 집계된 적이 없다. 하지만 제작자들에 따르면 보통 한 번에 수백 부 정도의 소규모 단위로 제작되고 있고, 온라인 한 독립잡지 서점에 따르면 현재 약 200여 종이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우리 지역에도 부는 독립잡지 바람

우리 지역에도 독립잡지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독립잡지 전문 서점이 문을 열었을 정도. 대구 남구 대명동 계명문화대 부근에 있는 '폴락'(Pollack)이다. 폴락은 대학 시절부터 독립잡지에 관심이 많았던 같은 학과 친구 5명이 의기투합해 문을 연 공간이다. 최성(29'여), 손지희(29'여), 허선윤(29'여), 김수정(29'여), 김인혜(29'여) 씨가 주인공. 폴락은 우리말로 '대구'라는 뜻이다. 우리 지역 이름인 '대구'와 동음이의어라는 가벼운 발상으로 서점 이름을 정했단다.

서점 문을 연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인근 대학생들이 하루 수십 명씩 방문한다고 했다. 독립잡지에 대해 처음 접하고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적잖다고 했다. 최성 씨는 "아트북이나 사진집 같은 비주얼 잡지가 많이 팔린다. 일단 독립잡지의 특색 있는 디자인에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잡지 속 기발한 콘텐츠에 매료돼 하나 둘 구입하는 사람들이 적잖단다.

이들은 독립잡지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향후 잡지 제작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서점에 가서 패션잡지를 한 번 펼쳐보세요. 이게 잡지인지 광고 전단지 뭉치인지 알 수 없죠. 사람들은 점점 다양하고 색다른 뭔가를 원하는데 기성잡지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독립잡지가 생겨났고,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폴락에서는 '메이드 인 대구' 독립잡지도 판매하고 있다. 현재 대구에서 꾸준히 발행되고 있는 독립잡지는 '모디', '에어에디션스'(aer-editions), '브래킷'(Bracket)이 대표적이다.

'모디'는 지난 4월부터 매달 발행되고 있는 대학생 문화잡지다. 제작 구성원은 지역 대학생 6명으로 시작한 것이 현재 34명이 취재, 사진촬영, 편집 등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풍부한 콘텐츠 생산 능력을 자랑한다. 대학생들이 즐길 만한 문화 행사 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소개하고, 주요 문화행사 현장을 취재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간판 콘텐츠다.

그러면서 꾸준히 인기를 얻어 독립잡지로는 드물게 매달 정기 발행을 하고 있다. 사실 적잖은 독립잡지가 재정적 문제나 제작자의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비정기적으로 발행되거나 단 한 차례만 나오고는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황. 편집장 김애란(24'여) 씨는 "지역에서는 '버티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문화'가 된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 문화 현실을 빗댄 말이고 이는 독립잡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모디'는 순항 중이다. 매달 지역 젊은이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어에디션스'는 지역 출신 페인팅 작가 류은지 씨가 자신은 물론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해 만드는 아트북 형식의 독립잡지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온라인 웹진을 만들었던 그는 '손으로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출판물'을 만들고 싶어 인쇄매체로 되돌아왔단다. 류 씨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심지어 전자책(e-book)도 등장했지만 디지털이 충족해 줄 수 없는 감성의 영역이 분명히 있다"며 "잡지는 나의 생각이 현실화돼 두 손에 놓이는 매력을 가진 매체"라고 말했다.

'브래킷'은 지역 대학에서 시각디자인 강사로 활동 중인 그레그 레이첵(35'캐나다) 씨 등 대구 거주 외국인 3명이 제작하는 잡지다. 지역 예술인들의 콘텐츠를 담고, 생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형성에도 기여하는 것이 잡지의 취지다. 특히 그레그 레이첵 씨는 최근 대구의 도시철도 풍경을 스케치한 작품을 모은 독립잡지도 발행하는 등 지역 독립잡지계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립잡지의 매력은?

독립잡지의 매력은 무엇일까? 독립잡지 전문서점 '폴락'의 최성 씨는 '자기만족의 매력'을 꼽았다. 그는 "수익을 얻기보다 발행 자체에 비중을 두는 제작자가 많다. 월급을 털어 잡지 제작에 쏟아붓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매력적인 취미활동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어에디션스'의 발행인 류은지 작가는 '소장의 매력'을 꼽았다. 그는 "손에 잡히지 않는 디지털 매체와 달리 인쇄매체는 소장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특히 독립잡지는 기성잡지와 달리 독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과월호를 다시 발행하는 분위기가 있다. 금방 잊히는 기성잡지의 콘텐츠와 달리 독립잡지의 콘텐츠는 오랫동안 독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애정 가득한 소장 문화로 이어진다. 소장하고 싶게끔 만들면 인쇄매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모디'의 김애란 편집장은 "독립잡지는 만드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함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매체"라며 "아날로그 매체로도 '재미'를 매개로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손에 닿지 않는 쌍방향 소통을 하는 SNS보다 더 실감난다"고 말했다. 현재 수십 명의 잡지 제작진을 이끌고 있기도 한 그는 "독립잡지는 제작 구성원 저마다의 개성 있는 시각을 살려 시대를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그릇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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