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 최고 IT강국 한국서 공직선거 전자투표 않는 것은 난센스"

의대생에서 공대생을 거쳐 정치학자로 변신한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의대생에서 공대생을 거쳐 정치학자로 변신한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쓸모 없는 경험은 없다"고 말한다.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 존재한다. 그 관성은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크고 무거워진다. 그래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관성에 의존해 살아가는 불행한 삶들도 수두룩하다. 대구가톨릭대 장우영(45'정치외교학) 교수는 이러한 관성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새로운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의사에서 공대생으로 다시 정치학자로 변신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꿈과 열정, 용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가을비가 갠 지난달 29일 오후,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연구실에서 장 교수를 만났다. 반듯한 이미지가 영락없는 학자풍이다. 강의시간이 아님에도 찾아온 제자들의 진로 상담을 위해 인터뷰 장소를 굳이 연구실로 고집했다. 인터뷰 내내 불쑥불쑥 연구실을 찾는 학생들로 대화가 끊기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의대생→공대생→정치학자, 카멜레온 변신

처음부터 정치학을 공부하려는 생각을 갖진 않았다. 고교 3년 내내 문예반에서 활동할 정도로 문학소년이었다. 대학은 의대로 진학했다. 학력고사 성적이 좋은데다 이과였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바람이이기도 했다. 이때까지 의사가 꿈이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는 고귀한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열혈 의학도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암울한 시대상황은 의사의 꿈을 접게 했다. 1987년 건국대 의대에 입학 당시 때마침 6월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장 교수 역시 민주화운동에 동참했고 두꺼운 의학서적 대신 화염병을 들었다. 강제진압하는 경찰과 거리에서 온몸으로 맞서 싸우다 몇 차례나 경찰에 끌려간 적도 있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사회적으로 팽배한 시기였습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1987년 대선에서의 패배와 90년 3당 합당으로 뼈아픈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열과 기회주의가 6월 항쟁의 승리를 절반으로 만들었다는 데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사회현상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커졌지요." 의대를 중퇴한 장 교수는 1994년 돌연 공학자가 될 생각을 가졌다. 전자공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열풍이 분데다 사회 변혁에는 전자공학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지요." 광운대 전자재료공학과를 졸업했지만 공학자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공학자로서는 아무래도 시대 변화를 주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제너럴리스트보다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하는 안정된 공학의 세계에 흥미를 잃었단다.

다음은 '정치'였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치가가 되기보단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노숙자의 삶과 평범한 주부의 삶이 정치적 결정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데 흥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 군사정권이 막을 내렸지만 진정한 민주사회가 되려면 정치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자투표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2년 대선 직후 당시 한나라당 요구로 전수조사에 가까운 재검표를 한 것이 계기였다. "500만 표에 가까운 투표용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은행 지폐 검수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돈을 일일이 센 셈이지요."

시'군'구단위로 선관위가 있는 유일한 한국이 투'개표 사무만큼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설명이었다. 2005년 찾은 영국 선관위도 그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정치 선진국으로 알려진 영국의 경우 선거관리위원회가 겨우 생겨났고 전자투표는 물론 지방선거에 인터넷 투표, 문자메시지 투표도 도입하는 등 선거 현대화 실험을 하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를 현대화할 수 있는지 실험 중인 영국을 보면서 가장 선진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 적합한 투표방식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불필요한 경험은 없다

남들이 흔히 선택하는 길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온 장 교수는 자신의 선택을 옳은 선택으로 만들었다. 정치학자로 변신한 그는 물을 만난 고기였다. 비교정치, 공공정책,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기 시작했다. 1999년 서울의 몇몇 교수들과 함께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한 정치 현상을 연구하는 '정보사회연구회'를 만들기도 했다. 국내에선 이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10여 년째 정치학계에서도 생소했던 'IT(정보통신) 정치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지금은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선거 문화의 현대화를 이루자는 주장으로 학계와 시민사회의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2008년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부터 학자로서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매달 평균 1편씩 소셜미디어와 선거, 온라인 정당정치. 인터넷 선거 등 IT정치와 관련된 논문들을 쏟아냈다. 4편의 SSCI(미국의 사회과학 분야의 학술논문 인용지수)급 논문을 발표했다. 장 교수의 말을 빌면 '정말 빡시게 공부한 시절'이었다. 2009년과 2010년에는 마르퀴즈 후즈후 등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되기도 했다. 인터넷 정치 및 정치 커뮤니케이션 분야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점과 국제학술지에 SSCI급 논문 게재, 국제학술회의 발표, 해외 학자와의 공동저술 작업 등의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뒤늦게 뛰어든 정치학자의 길이었지만 이 같은 업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쓸모없다고 생각한 경험이었다. "의대나 공대 재학 시절에 공부했던 경험이 IT 정치학 분야를 연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됐습니다. 통계나 온라인 상의 트래픽, 콘텐츠 유통, 트래픽 등을 읽고 해독할 수 있었고 새로운 정치 트렌드를 해석'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 세상에 필요없는 경험은 없는 셈이지요."

◆교수님은 '장남 스타일'

장 교수의 수업은 항상 학생들이 줄을 설 정도로 만원을 이루었고 청강하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로 인기다. 주입식이 아니라 발표와 토론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이라 학생들의 흥미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 등 학생들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조언자가 되고 있다. 집안에서 장남이기도 한 장 교수는 큰 형님처럼 일일이 학생들이 진로'고민 상담에 나서고 있다. 때로는 학생들을 직접 정치현장에 데려가서 '살아있는 정치'를 체험하는 행사도 갖는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장남 스타일'이라 불린다.

현실정치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죄악'이라는 생각에서다. 최근에는 지방분권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방분권은 우리에게는 정치용어에 불과하지만 이미 서구 사회에서는 세계관이 되어 있습니다. 분권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고 당연히 실현되어야 하는 역사의 패러다임이 돼야합니다."

특히 이번 대선이 지방분권을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에서 이제는 분배의 문제를 고민할 때입니다. 사회적 타협과 합의가 이뤄져야 하고 이번 대선의 가장 큰 긍정적 의미 중 하나입니다. 어차피 선거가 아니면 지방분권 등 중요한 사회적 이견에 대한 합의가 어렵기 때문이죠."

의대생에서 공학도를 거쳐 정치학자, 불현듯 장 교수의 이력이 안철수 대통령 후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정치에 뛰어들 생각이 있거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할 지는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물론 정치에 입문할 생각은 추호도 없고요. 다만, 올바른 역사 의식과 지방분권에 대한 확실한 의지가 있고 약자와 소외된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인물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자투표 도입에 올인

대선을 40여 일 앞둔 요즘 장 교수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전자투표를 하자는 주장을 해왔지만 현실정치에서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IT강국이 아직도 전자투표를 공직선거에 도입하지 않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투표방식은 아직도 제자리입니다. 공직선거에 전자투표를 도입한 나라는 30여 개국에 이릅니다. 선진국은 물론 필리핀 등도 전자투표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전자투표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검증된 선거제도이기 때문에 우리도 공직선거법 틀 안에서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일부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전자투표에 대한 오류에 대해서도 각 정당의 정략적인 선택임을 강조했다. "도서관이나 학교, 관공서 등 신뢰도 높은 장소라면 어디든지 투표소로 지정, 터치스크린 방식의 투표가 가능합니다. 통합선거 명부를 활용하면 전국 어느 투표소에서든 투표를 할 수 있고, 해외도 예외가 아니지요." 장 교수가 주장하는 전자투표는 '현장투표'이기에 이에 대한 반대논리는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노동조합 선거, 정당 전당대회 등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이미 전자투표를 도입했습니다. 공직선거에서도 도입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과거 부정선거에 대한 사회적 트라우마와 기득권을 방어하려는 정치 세력의 정략적 선택은 극복해야 할 문제다.

"전자투표가 젊은 층, 야당에만 유리하다는 생각이 여당 쪽에 만연하지만 전혀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합니다. '빅 테이터'(big data)의 시대가 도래하고 '1인 미디어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트윗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완전히 개방된 공개를 제공하는 만큼 정치 변화의 요구는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현장이 없는 모바일 투표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직접'비밀선거의 원칙을 어길 우려가 있고 특정 계층과 세대의 표심을 과대 대표하는 데다 당원과 선거인단에 동일하게 1인 1표를 부여해 정당정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장우영 교수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초'중'고교를 다니고 건국대 의대에 입학해 예과 과정만 마치고(1990년) 광운대 전자재료공학과를 졸업(1996년)했다. 이후 건국대에서 대학원에서 정치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국제정치학회 과학기술정책분과 위원을 거쳐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한국정당학회 편집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치과정, 한국정치론, 지방정치 등을 강의하고 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김태형 기자 t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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