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양양 섭국

큰 홍합? 오해 마세요 진시황부터 장동건까지 소문 안내고 먹는 '보물\

향토음식 양양 섭국
향토음식 양양 섭국
홍합보다 크기가 열 배나 큰 동해안 큰섭조개.
홍합보다 크기가 열 배나 큰 동해안 큰섭조개.
맛 탐방단 박은주(39) 씨가 양양 섭국의 주 재료인 큰섭 속살을 열어 보이고 있다.
맛 탐방단 박은주(39) 씨가 양양 섭국의 주 재료인 큰섭 속살을 열어 보이고 있다.
양양 섭국의 주 재료인 우리나라 동해안 특산 큰섭은 홍합과 달리 껍질이 두껍고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하다.
양양 섭국의 주 재료인 우리나라 동해안 특산 큰섭은 홍합과 달리 껍질이 두껍고 크기가 어른 손바닥만 하다.

강원도 양양은 동해 바닷가의 낙산사 의상대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의상대 앞 푸른빛 넘실대는 동해바다는 언제나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 맑디맑은 바닷속에서 중국 진시황도 탐내던 보물이 살고 있다. 바로 섭이라는 조개이다.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이 조개로 끓여 낸 섭국은 말 그대로 진미. 아직 그리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양양 섭국은 전국 미식가들이 남몰래 찾는 음식으로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소녀경에 등장하는 동해안 큰섭

양양 섭국을 찾는 미식가들은 일단 쉿!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를 한다. 왜일까? 양양에서 섭국집으로 유명한 오산횟집(양양군 손양면 동호리)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다 이렇게 몰래 찾아온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그 까닭이 궁금해서 양양 동호해수욕장 입구에 위치한 입소문의 진앙지인 문제의 섭국집을 찾았다.

먼저 식당 문을 들어서자 입구 벽면이 온통 국내 유명 인사들의 방문기념 사인지로 뒤덮여 있다. '별미를 맛있게 잘 먹고 간다' '오 이 맛! 기분 좋게 잘 먹었다' 등등의 문구는 먼저 섭국집을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준다. 안성기를 비롯해 고소영 장동건 등 인기 연예인뿐만 아니라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크게 사인을 해 두고 갔다. 양양 섭국 맛이 아주 흡족했던 모양이다.

두리번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으려 하자 '어서 와요. 이리로 앉지요'라며 주인 김영화(61) 씨가 자리를 권한다. 군 장교 출신의 김 씨는 앉자마자 섭조개에 대한 이야기부터 펼친다. 섭은 홍합처럼 생겼지만 어른 손바닥만 한 우리 고유의 동해산 큰 조개로 양양지방에서는 옛날부터 국을 끓여 보양식으로 먹었다고 한다. 조개껍데기는 아주 단단해 어른이 밟아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이고 오래전부터 병중 병후 노약자들에게 전복 대신 이 섭을 갈아서 죽을 쑤어 먹였는데 그러면 기운을 금방 차리게 된다고. 산모 미역국도 섭을 넣어 끓였다고 한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실 때도 바닷가에 나가 이 섭을 따다가 국을 끓여 대접했어요." 섭국은 음식으로선 조금 볼품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양양에선 영양식으로 귀한 음식. 1980년도 군에서 전역하게 되면서 할머니한테 배워서 상품화를 처음 시도했단다. 그는 30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섭국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식당 내부를 온통 섭국으로 치장해 놓았을 정도다.

"우리 고유의 큰섭조개는 홍합하고 닮았긴 해도 차원이 다르지요." 흔히 시중에 유통되는 홍합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 함대를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외래 담치류의 작은 조개인데 이를 우리나라 고유 조개인 큰섭과 같은 종으로 혼동해 부르는 것은 잘못 알려진 탓이라고 말했다.

◆바다 내음이 물씬, 큰섭 조갯살

김 씨의 부인 신금순(55) 씨는 이 섭국으로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주관 여성수산물요리대회에 나가 금상을 수상했다.

"그 옛날 여름철에 바닷가에서 가마솥을 걸어 두고 보양식으로 끓일 땐 섭조개에다 소고기나 닭고기도 함께 넣고 끓였지요."

신씨가 귀띔하는 섭국 만드는 법은 이렇다. 먼저 나물 재료로 미나리와 부추, 양파를 준비하고 양념으로 마늘, 고추를 쓴다. 옛날에는 밀가루 반죽을 수제비 하듯이 국에 넣거나 국수를 넣기도 했지만 요즘은 나물 재료에다 밀가루를 버무려 옷을 입힌 뒤 끓는 국물에 넣어 걸쭉하게 끓여낸다. 섭조개를 삶아 시원하고도 감칠맛 나는 국물 내는 법이 비법. 시할머니한테 배운 이 섭조개 맛국물 내는 법은 아직 누구에게도 안 가르쳐 줬단다.

주문한 섭국이 나온다. 눈부터 맛을 보니 국물이 불그스름하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고춧가루가 아니고 암컷 섭조개로 국을 만들어서 그렇단다. 왜 암컷으로 만드냐고 하자 빙그레 웃으며 남자들에겐 암컷 섭이 더 좋다고 말한다.

갓 데친 부추와 함께 입안으로 한 숟갈 떠넣은 섭 조갯살은 쫄깃했다. 홍합의 살이 연한 것과는 달리 키조개처럼 굵직한 맛살이 들어 있는 섭 조갯살의 식감은 독특했다. 바로 앞 동해바다 내음이 배어 나오는 듯한 감칠맛은 잘 끓여 놓은 대구 고디탕과 흡사한 느낌을 주고 약간 질긴 듯 쫄깃하게 씹히는 맛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일행은 뜨거운 섭국을 식혀가며 먹느라 다들 입술에서 파도소리를 낸다. 부추와 양파, 미나리 등 향기가 짙은 나물은 섭조개의 감칠맛을 더욱 높여 주는 추임새 역할. 한참 숟가락질을 하는데 '맛이 어떠냐'고 묻는다. 일행의 대답은 일동 '최고예요'다. 한 그릇 뚝딱 하니 원기가 회복되고 간밤의 피로가 다 풀리는 듯하다. 숙취를 푸는 덴 더할 나위 없이 그만일 듯.

"섭국에 들어가는 채소는 좀 센 것을 써야 제맛을 내요. 파도 꽃대가 갓 올라가는 것이 좋지요. 소고기 국도 마찬가지잖아요. 국밥용 밥은 고두밥처럼 약간 되게 지어야 제격이지요." 하루 40㎏씩 연간 섭조개 알만 5t에서 6t을 쓴다고 한다. 양양 앞바다에서는 홍합의 20배 정도가 되는 7, 8년씩 묵은 큼지막한 섭조개들이 많이 잡힌다고. 그래서 조개 알이 너무 굵어서 칼로 잘 다져야 제맛을 낼 수 있단다. 밑반찬으로 무청장아찌와 산나물무침, 총각김치 땅콩조림이 나왔다. 섭국이 9천원, 섭죽 1만원이다. 섭해물전 1만5천원, 섭무침 3만원. 앞바다서 갓 잡은 자연산 회도 맛볼 수 있다.

◆양양 섭국의 '진시황' 스토리텔링

"소녀경에 나오는 그 신비한 조개가 바로 우리 동해산 큰섭입니다." 김 씨는 진시황이 우리나라로 사람을 보내 구해 먹었던 조개가 바로 이 큰섭이라고 한다. 그래서 섭은 중국에서 '동해부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이처럼 동해안 섭조개는 진시황이 거론되고 중국의 고전적 성의학서인 소녀경에도 등장할 정도로 음식에 달린 이야깃거리만 해도 상당한 파괴력을 지녔다. 즉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고…'라는 어느 건강보조식품의 '남자들 기운을 북돋워 준다'는 내용을 암시하는 광고 카피 스타일의 소재다. 특히 이 집 주인 김 씨가 겪은 일도 창업 과정의 기막힌 이야깃거리로 소개되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30년 전 개업 당시 섭조개 모양이 하도 신기하게 생겨서 사진을 찍어 액자를 방마다 걸어 뒀는데 그게 화근이 돼 난리가 난 거예요. 한 무리의 여성 손님들이 흥분해서 밥상을 뒤집어엎고 사진을 떼라고 고함치면서 뜻밖의 항의가 터져나온 것이지요." 처음엔 그도 '단순한 조개 사진인데 왜 이러느냐'고 시치미를 뗐지만 소동은 더욱 커져 국그릇이 날아올 정도로 막무가내가 됐었다고. 기가 막힌 섭조개 실물과 사진을 펴놓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그는 입에 거품을 문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 그제야 쉿! 전국 알 만한 남성 미식가들이 이 집을 몰래몰래 찾는 이유를 알게 됐다. 주말 휴일이면 손님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북새통을 이룬다고. 특히 대구경북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넌지시 귀띔했다.

"홍합은 제사상에 못 올라갑니다. 그런데 섭은 꼬치에 꿰서 올리지요. 섭은 번식력이 강해서 제사상에 올리면 부자가 된다는 설이 있어서 양양에선 많은 집이 제수용 어물로 씁니다." 김 씨의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걸쭉한' 스토리텔링 소재다. 이는 마치 안동간고등어가 안동지방 제사상에 오르는 이야기와도 같다.

"일부 홍합의 조개껍데기에서는 중금속이 검출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해산물이 기생하지 못하지요. 반면 섭은 홍합과 달리 껍데기에 해조류들이 더덕더덕 붙어 있어요. 그만큼 자연 그대로 청정하다는 얘기입니다."

주인 김 씨의 섭조개 찬사는 끝이 없다. 홍합보다 10배 이상 굵은 우리나라 동해안 큰섭에 대해 왕중권 한의학 박사는 일본에도 서식하지만 우리나라 것을 1등급으로 평가하며 주로 동해안 중부 이북에 서식하는 자연산 큰섭에는 칼슘과 마그네슘, 철분 및 양질의 단백질은 물론이고 비타민 B1, B2, B6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고 한다.

이처럼 높은 웰빙 식품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다양한 스토리텔링 소재를 지닌 양양 섭국은 맛도 맛이지만 잘만 하면 음식 자체를 캔에 넣은 흑염소 진액처럼 포장 건강식품으로 개발해 낼 수도 있는 향토음식의 산업화 조건을 넉넉히 갖췄다고 평가할 수 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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