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신뢰를 잃어 슬프다

한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 촬영한 MR 혈관사진을 가지고 오셨다. 혈관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부위에 동맥류가 있었다. MR 혈관사진은 뼈를 보여주지 않아 두개강 안에 동맥류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뼈를 함께 보여주는 CT 혈관사진을 찍자고 했다. 시행하니 동맥류는 두개강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돼 앞으로 동맥류의 진행 과정을 관찰해 보자고 말씀드렸다.

그분이 "MR 혈관촬영이 더 정확하죠?"하고, 마치 내가 돈을 벌기 위하여 CT 혈관촬영을 다시 한 것처럼,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을 남기면서 진찰실을 나가셨다.

어떤 경우는 CT 혹은 MR 혈관촬영을 하고 나서 다시 뇌혈관조영술을 하자고 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동맥류의 모양이나 형태, 주위 혈관들과의 관계를 알아 수술적 결찰 혹은 색전술 등의 치료 방침을 정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처음부터 뇌혈관조영술을 시행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갖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방법은 입원해서 부분마취나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환자가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침습성 방법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 한다.

다른 경우는 뇌하수체선종을 진단받고 수술을 받으러 오는 경우다. 처음 진찰한 병원에서는 뇌 전체를 보는 MRI 사진을 찍어 뇌하수체선종이 발견되면 환자를 보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수술을 시행하려면 더 정확한 종양의 상태와 주위 조직과의 관계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안상(sella:鞍上) MRI를 찍자고 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기 위해 CT나 MRI 사진을 다시 찍자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환자들은 '의사가 돈을 벌려고 다시 찍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할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지금의 의료 환경은 모든 병원들이 돈을 버는데 전념해야 병원을 경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야 새로운 기계도 사고 직원들 봉급도 준다. 대학병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특진비나 업적평가와 연계해서 임상교수들에게 돈을 벌도록 압박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의료행위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시술이며 조작인데 어떻게 돈과 연관해서 시행할 수 있겠는가?'하는 회의도 든다. 아울러 '과거 진료 실적이 봉급과 업적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던 시절보다 지금의 제도가 진정으로 환자들을 위하고 의학 발전을 이루며 의사와 환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가?'하는 의문도 생긴다.

정말로 돈이 없는 환자들을 만나면 사회사업실에 찾아가 의학 연구에 중요한 환자라고 떼를 써서 치료를 무료로 해 주었던 젊었던 시절 내 마음속 그 따듯한 감정은 이제 모두 사라졌단 말인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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