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의 'NLL(서해북방한계선) 발언'을 둘러싼 여야의 진실게임이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10월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하루 전 노무현'김정일 단독회담이 개최되었고, 회담내용을 녹취한 북한 통전부가 대화록을 작성하여 우리 정부의 비선라인과 공유했다는 발언을 했다.
정 의원은 그 대화록을 본 적이 있으며, 대화록에는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 핵보유는 정당한 조치라는 논리로 내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북한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즉각 이해찬 대표 명의로 정 의원을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고발했고, 새누리당은 이 대표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여야의 진실공방은 10월 29일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원세훈 국정원장이 "대화록은 존재한다"고 밝힘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새누리당은 대화록의 열람을 요구하고 있고, 민주당은 그래서는 안 된다며 공방 중이다.
정상 대화록이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대화록 공개는 향후 남북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외교의 근간을 흔드는 자해행위라는 것이다. 공표되지 않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는 외교 도의에 어긋나고, 따라서 대화록이 공개될 경우 향후 우리의 정상외교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전혀 없는 주장은 아니다. 만약에 실체 없는 의혹에 의거해 외교협상 대화록을 일일이 공개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분명히 우리 외교수행 능력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남북관계의 추가적 경색도 당분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유력 대통령 후보 세 명 모두 NLL 사수의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NLL 인식에서 자유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문재인 후보는 NLL 사수를 누차 다짐하고 있고, NLL의 철저한 준수를 전제로 서해평화지역을 구축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안철수 후보도 비슷한 입장이다). 박근혜 후보 역시 NLL만 준수된다면 10'4 합의문에 명시된 평화수역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각론의 차이야 있겠지만 세 후보 모두 선(先)NLL 준수, 후(後)평화수역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NLL-평화수역에 관한 세 후보의 인식 차이보다 남북의 인식 차이가 훨씬 크다는 점이다. 북한은 "10'4 선언에 명기된 조선 서해에서의 공동어로와 평화수역 설정 문제는 북방한계선 자체의 불법'무법성을 전제로 한 북남합의 조치의 하나"이고 "북방한계선 존중을 전제로 10'4 선언에서 합의된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박근혜의 떠벌임 등은 북남공동합의의 경위와 내용조차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9월 29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 선(先)NLL 폐기, 후(後)평화수역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주장이 평화수역을 위해 "남측은 앞으로 NLL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에 토대하고 있고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우리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이해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선거에 개입하여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꼼수에 불과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NLL에 관한 오해와 갈등을 불식시키고 추후에라도 남북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 유지하기 위해서도, '남북의 NLL 진실게임'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도 대화록 열람 외의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는 새누리당과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과 북의 문제이고 국가 안위에 관한 문제다. '대통령 기록물' 등 국가기밀은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밀유지만이 지고(至高)의 가치라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나 고등법원장 요청에 의해 기밀문건 열람을 가능하게 한 법을 애초에 제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NLL 사수는 기밀유지에 우선하는 중차대한 국가안보 현안이다. 일반 열람이 적절하지 않다면 국회정보위 비공개회의에서 대화록을 열람할 수 있는 방법 등을 강구해야 한다. 과거 지향적으로만 진행되어온 정치권의 NLL 논의를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우회(迂廻)할 수 없는 과정이다.
김재천/서강대 교수·정치학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