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떤 문화의 강물을 헤엄쳐 건너가고 있을까요? 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이며, 스스로 즐겨 하는 것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억압적 공부 문화와 상업적 연예 오락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억압적인 공부 문화가 그들의 멱살을 잡아채며 일상의 삶을 숨 가쁘게 몰아세우고 있다면, 상업적 연예 오락 문화는 중독성이 강한 문법으로 그들을 세뇌시켜 마음을 천박하게 물들이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이 강력한 두 가지 문화는 그들 스스로의 느낌이나 주체적인 생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요. 무엇인가를 스스로 희망하고, 추구하고, 경험한 것을 통해 열어가는 강물이 아니기에, 그 위를 부지런히 떠다닌다 해도 결국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문화적 저능아로 전락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폭력적'수동적'비주체적인 일상의 안개를 걷어내고 독자적 경험과 사유의 마당을 펼쳐 그들을 문화적 주체자로 만들어가는 일이 교육의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느낌을 존중하고, 자신의 호흡으로 말하며, 온전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과 진지하게 공유하는 경험을 쌓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성찰성을 높이는 교육으로서, 그리고 건강한 문화 창조의 근원적인 힘을 기르는 방편으로서 시를 읽히는 것이 어떨까요?
시는, 스스로 나서서 습관적인 지각이나 인식의 낡은 틀을 깨뜨리는 망치질이기에, 시를 읽으면 무엇보다도 자주적이고도 창의적인 생각의 날을 벼릴 수 있습니다.
창의력은 사고력의 한 종류이며, 사고력은 언어 사용과 관련이 깊다고 볼 때, 가장 창의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시를 읽히는 것이 창의력을 기르는 첩경이 될 수 있지요. 시의 언어는 운율, 비유, 상징, 알레고리, 반어, 역설, 모순형용 등의 방법으로 창의력을 키우고 상상력을 확대하여 의미의 비옥한 잉여 가치를 생산해 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아기가 예쁘다는 표현으로 '신규야 부르면/ 코부터 발름발름 대답하지요/ 눈부터 생글생글 대답하지요'라는 시적 표현과 '우리 아기는 매우 예쁘지요. 아주, 아주, 정말, 정말 예쁘지요'라는 일상적 표현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입니까? 전자는 시의 어법인 이미지를 사용하여 아기의 예쁜 모습을 금방 떠올리게 하지만, 후자는 그 의미를 분명하게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자처럼, 의미를 확대 재생산하여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시적 언어 사용 기능은, 이제 단순히 문학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 창조 행위의 기본 요청이며, 지식기반사회의 생존 조건으로서 고도의 창의력을 발휘하며 자존의 삶을 살아가려는 인간의 필수 장비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는 인간답지 못한 삶의 각종 병리현상을 제독하는 항체입니다. 시는 생명에 대한 반성문이며 생명 사랑의 각서입니다. 시 삼백 편을 두고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思無邪)라고 요약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지만, '온유하고 돈독함은 시가 가르치는 바'(溫柔敦厚詩敎也)라 한 것도 시의 도덕적 감화력 내지는 인간 형성력을 긍정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 또한 시의 교육적 효용을 역설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요. 이처럼 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문적 전통의 중심부에 자리해 왔습니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힘으로 다시 걷는다.'
반칠환의 시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도덕의 힘은 '보도블록 틈에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겨우 꽃을 피운 씀바귀 한 포기'를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눈길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눈길을 길러주는 것이 시입니다. 오락이 삶의 근원적 문제에서 눈을 돌려 잠정적으로 도피하게 하는 수단이라면, 시는 그 근원적 문제를 직시하고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올곧은 삶의 자세를 일깨워 주는 격려입니다. 시는, 강물처럼 바람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감동으로 적셔, 삶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삶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줍니다.
맑은 햇살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스며 흐르는 가을입니다. 이 성찰의 계절에,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시의 숲으로 들어가 그 골짜기 깊은 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맨발로 헤매도록 하면 어떨까요. 어쩌면 이 일은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이 가을의 의무가 아닐는지요.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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