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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P 이래 노무현·정몽준까지…大選은 '단일화 역사'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대선은 단일화의 역사로 정리할 수 있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야당의 김대중(DJ), 김영삼(YS) 후보와의 3자 대결에서 '어부지리' 승리를 거뒀다. 양 김이 민주진영에서 끊임없이 요구한 후보 단일화를 "3자 구도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내친 덕분이었다.

역대 대선전이 단일화를 두고 파란의 역사를 보인 것은 그 이후부터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가 79석에 그치자 DJ는 자민련 김종필(JP) 총재와 연대를 모색하면서 대권의 꿈을 이어갔다. DJ는 JP의 염원인 '내각제 개헌'을 제시하면서 1997년 11월 3일 DJP연합을 출범시켰다. 반면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민주당 조순 총재를,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는 한나라당 박찬종 고문과 연대했지만 DJP연합의 벽을 깨지 못했다.

'이회창 대세론'이 견고했던 2002년 16대 대선 당시에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가 대선후보 등록 직전인 11월 25일 노 후보로 단일화에 성공했다. 여론조사 방식이었다. 하지만 정 의원이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 18일, 단일화 공조를 파기하면서 노 후보 동정론까지 가세해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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