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뇌출혈 남편 돌보는 중국동포 김옥순 씨

"난 잘 지내…" 귓가 맴도는 남편의 목소리

김옥순(67) 씨가 남편 노봉오(69) 씨 옆에서 노 씨를 간호하고 있다. 김 씨는 노 씨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지만 병원비와 앞으로 살아갈 생각에 막막하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김옥순(67) 씨가 남편 노봉오(69) 씨 옆에서 노 씨를 간호하고 있다. 김 씨는 노 씨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지만 병원비와 앞으로 살아갈 생각에 막막하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여보, 내가 왔어요. 계속 옆에 있을 테니 걱정 말아요."

올 1월 1일, 남들은 새해 맞이의 기쁨을 즐기고 있을 때 노봉오(69·경북 칠곡군 가산면) 씨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한 참외 비닐하우스에서 날품팔이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원인은 뇌출혈. 인천에서 가정부 일하던 아내 김옥순(67) 씨는 서울에 있던 작은아들과 함께 한걸음에 남편이 실려간 대구의 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노 씨 부부는 중국에서 건너온 지 여섯 해째인 새해 첫날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노 씨는 지금도 대구의료원에 입원해 있고, 아내 김 씨는 노 씨 곁을 지키고 있다.

◆남편의 마지막 말 "내 걱정 마라."

노 씨 부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 동포다. 젊었을 때 노 씨는 중국 심양에 있는 농업기술연구소의 연구원이었고, 김 씨는 심양의 문교국 공무원이었다. 김 씨는 노 씨의 착한 심성에 반해 결혼했다.

"중국에 있을 때 동네 근처에 형편이 어려운 9남매 집이 있었어요. 그 집안 사정을 딱하게 느낀 남편은 그 집 장녀에게 후원금도 주고 결혼도 시켜줬죠. 그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편이었어요."

노 씨 부부가 한국으로 넘어온 것은 2006년이었다. 중국에서 61세 이상 중국 국적자들에게 정책적으로 한국 비자를 쉽게 내주던 해였다. 퇴직 후 중국에서 식당을 하던 노 씨 부부는 여행차 한국에 왔다가 한국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에 눌러앉았다.

맨 처음 정착한 곳은 인천이었다. 남편 노 씨는 주유소 건설 현장에서 낮에는 막노동을, 밤에는 건설현장 경비를 섰다. 노 씨는 특유의 근면'성실함으로 현장에서 인정받았다. 아내 김 씨도 가정부 일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노 씨는 일을 쉬는 법이 없었다. 몇 년 전에는 가로수를 받치는 고임목을 만드는 목재 가공공장에서 2년간 일을 했고, 그 후에는 건설현장과 농사일 날품팔이로 계속 일을 했다.

아내 김 씨는 "목재공장에 남편을 만나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공장 사장과 주변 동료들이 '정말 남편 잘 만나신 것 같다. 이렇게 근면'성실한 분을 못 봤다'며 칭찬해 주더라"고 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탓이었을까. 올 정초 노 씨는 자신이 일하던 참외 비닐하우스에서 쓰러졌다. 원인은 뇌출혈. 평생 감기 한 번 앓아본 적 없었던 노 씨였던 터라 충격이 더했다.

노 씨는 이날 오전 5시쯤 아내 김 씨에게 전화해 "잘 지내고 있으니 내 걱정 말고 일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이는 노 씨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노 씨는 쓰러진 뒤 아직 김 씨에게 한 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병마, 빚과의 전쟁

노 씨가 쓰러진 뒤 노 씨가 일하던 곳 근처 병원에선 "뇌출혈이어서 빨리 수술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려 노 씨는 수술이 가능한 대구 서구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문제는 수술비와 병원비였다. 중국에 남아 있던 재산은 이미 중국에 있는 큰아들의 심장병 치료에 모두 사용한 터라 노 씨 부부에겐 수술비를 감당할 만한 돈이 없었다.

노 씨의 작은아들이 병원비 해결에 나섰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건설 일용직과 골재채취장 등에서 일하던 작은아들은 함께 일하던 동료와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려왔다. 빌린 돈으로 병원비와 수술비는 겨우 해결했지만 문제는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입원'치료비였다.

다행히 노 씨는 올 6월 21일 대구의료원으로 병원을 옮기면서 보건복지부에서 시행 중인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를 통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한도액 1천만원 중 이미 700만원을 사용한 상태다.

게다가 작은아들이 빌린 2천120만원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서울에서 일하던 작은아들은 사장에게 "아버지 병원비를 내야 하니 일당을 조금 올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작은아들은 돈을 더 주는 곳을 찾아 울산으로 내려가 일하고 있다. 김 씨는 작은아들이 아버지 병원비 마련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 가슴을 친다.

"얼마 전에 작은아들과 통화를 했는데, 요즘은 집에 일찍 들어가지도 못한대요. 집 앞에 빚을 받으러 온 옛 동료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12시 넘어 들어가 오전 4시에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난 당신 절대 포기 못 해"

아내 김 씨는 키가 160cm가 안 된다. 작은 몸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을 움직이다 보니 김 씨의 몸에도 문제가 생겼다. 허리디스크가 발병한 것이다. 김 씨는 하루도 진통제 없이는 버틸 수 없지만 치료를 받을 돈도 시간도 없다.

김 씨는 "허리가 안 아플 때는 그래도 남편에게 바깥 바람을 쐬게 했지만 지금은 아예 할 수가 없다"며 "남편이 온종일 누워있는 탓에 욕창까지 심해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수중에 돈이 없는데다 작은아들도 울산으로 직장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쓸 돈도 없는 상태다. 김 씨가 남편을 간호하면서 돈 때문에 겪는 가장 현실적인 고통은 밥을 사먹을 돈이 없다는 것이다. 김 씨는 주변 환자나 보호자가 남기거나 먹으라고 준 음식을 먹거나 지나가면서 김 씨를 안타깝게 본 한 수녀가 가끔 건네주는 식권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때로는 굶는다.

하지만 김 씨는 남편을 포기할 수 없다. 김 씨에게 남편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술 후 의식도 21일 만에 회복했고, 지금은 손과 발에 감각과 돌아오고 있으며, 김 씨 말에 노 씨는 눈을 깜빡거리며 답하기도 한다. 김 씨는 "남편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고 했다.

"남편은 제게 너무 소중한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너무 힘드니 포기하라'는 말도 들었지만, 이렇게 착하게 살아왔고 내게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을 어찌 버린단 말입니까? 전 제 남편 절대 포기 못 합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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