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열린 금융감독원(금감원) 임원회의에서 "유럽발 재정위기와 내수경기 침체로 가계와 기업이 더 힘들어하고 있다. 가계, 기업의 부실증대에 대비해 금감원 차원의 선제적 대응방안이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원장은 금융회사의 건전성강화 업무 이외에도 경제침체가 서민층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서민, 청년, 지방, 중소기업 보호를 염두에 둔 화두를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권 원장은 애민(愛民)과 위민(爲民)정신을 되새겨 공직자가 백성을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항상 고민한다.
다산이 "서민의 삶 속에서 실천적 해법을 찾았다"고 강조한 점, "위기는 항상 태평해 보일 때 움트는 것"이라 경고한 점을 가슴에 새겨 권 원장은'약자우선론'을 업무좌표로 새기고 있다.
-서민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금감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제금융시기(IMF) 사태 이후 실업자가 양산되고 경제양극화가 시작됐다. 실업자에다 조기 은퇴자들이 자영업으로 대거 진출한 결과 현재 자영업자는 580만 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취업자 2천500만 명의 23% 수준으로 OECD국가 평균인 10%대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문 닫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또 마땅한 일자리가 없으니 자영업으로의 신규진출이 지속돼 창업과 도산이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 사이에 가계부채는 280조원에서 920조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이 취약 계층에 대한 문턱을 높인다면 서민은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 사금융, 대부업체를 찾게 되는데, 갈수록 가계부채의 질이 나빠지게 된다. 이것이 금융감독 당국이 서민 보호에 나서야 할 이유다.
-서민을 위한 정책은 어떤 것이 있나.
▶금감원장에 부임하면서 대표적 서민대출상품인 '새희망홀씨' 활성화에 전력했다. 지원규모를 연간 2조원까지 확대하고 과거 연체기록이 있는 사람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원조건도 완화했다. 또 서민금융 지원을 위한 5대 과제로 ▷은행권의 자율적인 프리워크아웃 활성화 ▷은행권의 10%대 신용대출상품 개발 ▷서민금융 거점점포 및 전담창구 개설 ▷저신용자 맞춤형 신용평가체계 구축 ▷서민금융 상생지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하우스푸어(집 가진 가난한 사람들)도 사회문제다. 대책이 없나.
▶하우스푸어 문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금감원은 단계적 대응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초 금감원은 금융회사들이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무리하게 상환요구를 하지 않도록 지도한 데 이어 금융권 자율의 프리워크아웃 제도 및 담보물 매매중개지원제도를 활성화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일부 은행이 시행중인 '신탁 후 재임대' 제도가 충실히 실행되도록 지원하고 있다. 시장상황의 급속한 악화시 은행권 공동으로 세일 앤 리스백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계획이다.
-깡통주택(집을 팔아도 주택담보대출금과 전세금을 모두 돌려줄 수 없는 주택)에 대한 대책은.
▶깡통주택에 대한 경매를 3개월 이상 미뤄주는 제도를 시행한다. 2007년 도입된 금융기관 담보물 매매중개지원 제도는 대출금을 연체한 채무자가 담보로 잡혔던 집을 개인 간 거래로 처분할 수 있도록 금융회사가 중개하는 제도다. 채무자는 법원 경매로 넘길 때보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어 대출금'전세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금융회사와 세입자의 손해도 적어진다. 기존에는 매매중개지원 대상이 되면 경매 등 법적 절차가 3개월까지만 중단됐다. 금감원은 이 기간을 더 늘리고 기존 은행 중심에서 보험사'카드사로까지 금융회사 참여를 확대할 방침이다.
-요즘 힐링이 대세다. 금감원의 '서민 힐링'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각종 금융범죄가 판친다. 작년 하반기에 대출사기, 보이스피싱, 보험사기, 정치 테마주 등 '서민금융 4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또 금감원에 '1332'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해 9월말까지 6만6천여 건의 신고 및 상담을 접수하고 피해구제에 노력하고 있다.
전국의 읍'면'동, 군부대, 중소도시 등 전국 방방곡곡을 버스로 이동하면서 서민을 상대로 금융상담과 교육을 펼치는 '금융사랑방버스' 사업도 출범했다. 5개월간 77곳을 방문해 1천700여 건을 상담했다. 지난 8월에 출범하고 10월 17일부터 사업을 개시한 '새희망 힐링펀드'는 금융회사 및 협회, 금융감독원의 법인카드 포인트를 기부해서 만든 재원으로 보이스피싱, 불법사금융,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등으로 인한 피해자 중 저소득'저신용층에게 장기저리자금을 대출해 주는 사업이다.
-청년 일자리는 없고 창업도 힘들다.
▶금융현실에 대한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캠퍼스금융토크'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뜨거워 지방으로까지 확대했다. 지금까지 경북대 등 8개 대학에서 행사를 했는데 사회자와 그 대학 출신의 성공한 금융인, 금융감독원장, 대학생 등이 토론하는 방식이다.
또 청소년용 '금융교과서'를 만들어 전국 초중고에 배포했고 300곳 이상 금융교육시범학교를 선정했다. 지난 8월에는 130여 명으로 구성된 '대학생 금융교육 봉사단'을 출범시켜 청소년 금융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4천억원으로 '청년창업 펀드'를 만들었다. 작년 기준으로 대학생들이 4천500억원에 달하는 돈을 고금리로 사용하고 있었다. 정부의 학자금 지원제도가 있는데도 대학생들이 고금리의 돈을 빌려 쓰고 있었다. 생보협회에서 200억원, 은행권에서 2천억원을 기금으로 내서 학생들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타게 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심화, 미국 및 중국의 경제 회복 지연 등으로 국내 경제는 물론 대구경북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국내경제는 글로벌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및 내수 부진으로 성장세 둔화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은 주력산업인 섬유(대구), 전기'전자(구미), 철강'금속(포항)의 수출실적이 크게 악화되고 있는데다 전반적인 소비나 제조업 생산이 감소해 지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대책이 절실하다.
수출과 내수 부진 등으로 대구경북의 제조업, 비제조업 사업현황이 모두 하락하고 있다. 지역 기업자금사정 BSI도 제조업, 비제조업 모두 하락했다. 최근 부도업체 증가로 어음부도율이 올해 7월 0.18%에서 8월 0.22%로 크게 상승했다. 전국 평균이 0.12%인데, 대구경북 기업들은 특히 더 어렵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중소법인대출 취급 실적이 부진한 은행에 대해 대출확대 계획을 요구하면서 은행의 중소기업 자금공급을 지도했다. 지난 8월에는 동산담보대출을 도입, 국내은행이 10월까지 1천18개 업체에 대해 2천221억원을 취급하도록 했다. 지속적으로 담보 부족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여건을 개선하겠다.
-지방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더 시급하다.
▶9월부터 '찾아가는 금융 상담서비스'를 시행, 대구 성서산업단지 등 4개 단지를 찾았다. 성서산업단지를 직접 방문해 일일 금융상담센터에서 금융애로 사항을 듣고 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기업인들은 연대보증제도 폐지 지도에도 일부 금융회사의 인보증 요구 관행이 지속되고 있고, 일시적 자금곤란으로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을 이용한 중소기업이 불합리한 대출차별을 경험했다고 호소했다. 신'기보 등 보증기관의 사전고지 없는 부당한 보증기간 연장 거부 등에 대해서도 들었다.
금감원은 개선 가능한 부분은 즉시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기타 의견은 관계기관과 협의 중이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1956년 대구 출생.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79년에 23회 행정고시 합격, 미국 밴더빌트대학 경제학 석사. 국세청, 재무부 세제국, 재무정책국,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근무. 재경부 금융정책과장, 국무총리실 산업심의관'재정금융심의관, 재경부 세제실 재산소비세제국장 역임. 2007년 금감위 감독정책국장, 2008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2009년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및 부위원장 역임. 2011년 3월 금융감독원장 부임.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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