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택] '실버시대'

환갑잔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조부모 시대 땐 동네 어르신의 회갑연은 마을의 경사였다. 귀한 돼지를 잡고 막걸리와 단술, 각종 부침개와 시루떡 등 잔칫집에서 차린 푸짐한 음식을 마을의 남녀노소가 그날 하루만은 굶주리지 않고 배불리 먹었다.

특히 당사자가 마을에서 소문난 부자이거나 자식 농사에 성공한 어르신이라면 도심에 기거하는 각설이까지 소문을 듣고 몰려들어 장타령으로 흥을 돋우며 주린 배를 채웠다.

부모 세대에 접어들어 회갑연을 여는 경우가 뜸해지며 그 대신에 부부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경우가 생기더니 이제는 그마저 없어졌다.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남자 77세, 여자 84세인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회갑까지 살았음을 기념할 만한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전에 필자는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한 분의 상주에게 호상이라고 말했다가 주변 친구들의 핀잔을 들은 바 있다. 호상이라고 하려면 최소한 85세는 넘겨야 한다고. 노령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제대로 꿰지 못한 탓이었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노령인구 증가 비율을 2000년 11.2%에서 2025년 34.1%, 2050년 65.6%로 발표한 바 있다. 즉 2050년이 되면 노동가능자 100명이 65.6명의 어르신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생활과 복지 등의 발달로 노령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적절한 출산율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국가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다. 아울러 어르신에게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소일거리인 적절한 놀이문화를 제공하는 것도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사회적 책무일 것이다.

두류공원과 달성공원이 노인들의 전용공간이 된 지 오래다. 넓은 두류공원에는 오토바이로 데이트를 즐기는 부류와 바둑과 장기를 두는 부류, 그리고 달성공원처럼 소주병을 가운데 두고 세월을 낚는 어르신 부류로 구별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평일 공원의 특색에 따라 어르신들이 스스로 놀이문화를 개발한 것이다.

도심에 모이는 어르신이 향하는 곳은 주로 진골목이나 경상감영공원 인근이다. 특히 경상감영공원은 남녀 어르신이 모여 사교춤을 추는 곳으로 유명하다. 매일 이른 오후가 되면 꽃단장한 남녀 어르신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운동 삼아 춤을 추며 가벼운 음주로 시간을 소일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도심 속의 실버거리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도 간혹 젊은이 못지않게 어르신들의 연애사건이 발생하여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의학과 섭생(攝生)의 발달로 '현재 나이×0.7 세대'가 대세인 시대에 건강한 사고방식을 갖고 건전하게 어울리는 어르신들을 사시(斜視)로 보지 않는 것도 수명 100세 시대를 조기에 정착시키는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정재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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