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오늘은 수능시험일

최근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부정 입학시키려 한 학부모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당연히 브로커가 끼어 있지만, 그 수법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위조 여권은 기본이고 남편과 위장 이혼하고 생면부지의 남미 사람과 위장 결혼한 어머니도 있었다. 이렇게 하는 데 이들이 치른 금액은 4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이다. 47명이 적발됐는데 대개 재벌가 며느리거나 회사 임원, 의사, 변호사 등이었다. 이들의 행동을 보면, 지성은 초등학교도 못 다닌 무학 수준이지만, '금전적'으로는 상류층임이 분명하다.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은 둘로 나뉠 듯하다. 대부분은 이들의 행동을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겠지만, 상당수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다. 이는 범법 행위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려는 '부모라는 아주 수상한 특수직'에 있는 이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원정 출산이나 조기 유학처럼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사랑이 비뚤게 나간 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다만 과거는 사랑과 훈육이 어느 정도 엇비슷한 비율이었다고 하면, 최근은 사랑의 비율이 크게 높아진 차이가 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자식에게 책임과 의무에 성실하라고 가르치기보다, 남보다 앞서려면 어떤 짓도 해야 함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다. 범위를 좁혀 대학 입시에 초점을 맞춘 교육 문제만 두고 생각해봐도 이는 금방 드러난다.

현재의 대학 입시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다. 수십 년 동안 입시를 지도한 전문가도 고개를 저을 정도다. 많이 줄였는데도 전형 방법이 3천 가지나 되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대입도 큰 장점이 있다. 아이를 한, 둘 대학에 보내고 나면 자연스럽게 교육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좀 알 만하면 바뀌는 단점만 없다면, 당장 입시 컨설팅 회사를 차려도 손색이 없는 수준에 이른다. 학부모가 아이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려고 걸은 길을 훑어보면 이는 당연하다.

대개 어머니가 맡는 역할이지만, 아이가 걷기도 전에 좋은 교재 선택에 고민한다. 이 시기의 많은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천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영재 교육이 관심이다. 온갖 유아 학습지를 동원하고, 소문난 사립 유치원에 넣으려고 줄을 선다. 초등학교 입학쯤 되면 조기 교육에는 어느 학원이 좋은지, 대학이나 교육청의 영재교육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줄줄 꿴다.

상급생이 될수록 아이가 공부하는지, 부모가 공부하는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학부모의 역할은 멀티태스커(Multi-Tasker)이다.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비해 스펙 챙기랴, 내신 위해 공부시키랴, 좋은 학원에 대한 정보 챙기랴, 슈퍼우먼이 따로 없다. 궁극적인 종착역인 대학 입시가 다가오면 입학사정관, 내신, 논술 등 어떤 방법으로 원하는 대학에 보낼지를 위해 복잡한 입시 전형을 공부해야 한다. 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이 정도로 열심히 했다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을 정도로 몰입한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많은 학부모가 이 정도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니 어찌 교육 전문가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오늘은 대학 입학 수능시험일이다. 올해는 접수자가 66만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2만 5천여 명이 줄었다. 접수자가 제일 많았던 1999년의 89만여 명보다는 30% 이상 줄었다. 하지만 수시 전형이 많이 늘어나 수능만으로 대학 가기는 어느 해보다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시각이면 한창 문제 풀이에 열중할 수험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겉으로는 많이 하는 공자 말씀이다. '대학 입시는 긴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다. 실패해도 두려워하지 마라.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적성에 맞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길을 가라'는 얘기다. 속내는 전혀 다르다. '시험을 잘 치면 좋은 대학을 가든지, 적성에 맞추든지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못 치면 선택의 여지도 없다. 그리고 아직 이 사회는 학벌 사회이고,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시험이 네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라'라고 말한다. 이런 유산을 물려준 것이 부끄럽고 한심하지만, 이제 세상을 바꿀 이는 너희고, 네 자식에게는 교육 전문가가 아닌, 부모가 되어 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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