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종·민족 넘어 친구로, 열린 대구서 '한국 열공'

지구촌 40여개국에서 온 그들의 일상

계명대 성서캠퍼스에서 열린
계명대 성서캠퍼스에서 열린 '한국어학당 외국인학생 잔치한마당'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흥겨운 한국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5년 전부터 지역 거주 외국인 젊은이들이 모이는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는 경북대 북문 인근 주점
5년 전부터 지역 거주 외국인 젊은이들이 모이는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는 경북대 북문 인근 주점 '슈가조스'. 슈가조스 제공
계명대 성서캠퍼스 인근 주점
계명대 성서캠퍼스 인근 주점 '시드니 스트릿 펍'에서는 매달 두 차례 한국인과 외국인 젊은이들이 모여 교류하는 '외국인 친구 영어 파티'가 열린다. 외국인 친구 영어 파티 제공

외국인 유학생 10만 명(올해 교육과학기술부 발표) 시대. 우리 지역에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학생이 많이 찾고 있다. 외국인 학생들은 유학의 주된 목적인 공부는 물론 현지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한국 문화를 향유하는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5천 명 외국인 유학생 지역 거주 중

대구 동성로나 성서산업단지만큼 외국인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학 캠퍼스다. 지역 각 대학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경북대의 경우 40개국에서 온 1천400여 명의 외국인 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영남대에도 42개국에서 1천300여 명의 외국인 학생이 와 있고, 계명대는 760명, 대구대는 650명 정도 규모다. 이외 다른 지역 대학의 외국인 학생과 집계되지 않는 수치까지 감안하면 5천 명가량 외국인 학생들이 우리 지역에 와 있다는 얘기다. 경북대를 예로 들면 2002년 130여 명이었던 외국인 학생 수가 10년 만인 올해 10배 이상으로 부쩍 늘었다. 출신 국가도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가까운 동아시아 지역은 물론 북미나 유럽 및 중동 지역 등 40개국으로 다양해졌다.

◆외국인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은?

이달 6일 오후 9시쯤 찾은 대구 경북대 북문 인근 대학가의 주점 '슈가조스'. 33㎡ 정도의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20여 명의 외국인 젊은이들이 가득 모여 떠들썩했다. 이곳 주인은 "초저녁부터 외국인 젊은이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공간 한쪽에는 드럼세트와 음향장비 등 공연을 위한 도구들이 모여 있었고, 천장에는 지금까지 이곳을 방문해 공연을 한 외국인과 한국인들의 이름을 적은 종이 수백 장이 붙어 있었다. 주인은 "5년 전 문을 열었을 때부터 하나 둘 붙이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천장을 뒤덮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인근 경북대와 영진전문대 등에서 외국인 학생은 물론 외국인 교수, 영어 강사 등이 즐겨 찾는 '아지트'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외국인 젊은이들이 와서 소소한 저녁 일상을 즐긴단다. 매주 화요일에는 다트 게임 대회를 열고, 목요일에는 공연 무대를 무료로 빌려 주는 '오픈 마이크' 행사를 열고, 금'토요일에는 외국인은 물론 한국인 젊은이들도 함께 어우러져 라이브 공연을 벌인다. 이렇듯 소소하지만 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가 타국 생활에 지친 외국인 젊은이들을 모으는 핵심 콘텐츠다.

이곳 주인은 "이곳에 와서 서로 알게 되고 친해지는 대구 거주 외국인 젊은이들이 많다. 또 한국인 젊은이들과 사교의 장도 펼쳐진다. 여기서 만나 결혼한 외국인'한국인 커플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실은 그 역시 경북대에서 영어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남편을 여기서 만나 결혼했단다.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젊은이들의 여가 생활은 주로 밤에 주점 등에서 이뤄진다. 그렇다고 술만 흥청망청 마시는 것은 아니다. 낮에는 공부 등 다른 활동에 매진하다 밤이면 소소한 교류를 즐기러 오는 것이다. 대구 동성로의 삼덕성당 인근 클럽골목에 있는 T주점이 지역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특히 금'토요일이면 외국인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러면서 외국인 젊은이들끼리는 물론 한국인 젊은이들과의 소통도 이뤄진다. 대구 달서구 계명대 성서캠퍼스 인근 대학가의 주점 '시드니 스트릿 펍'. 호주인 주인이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매달 둘째, 넷째 주 토요일마다 '외국인 친구 영어 파티'가 열린다. 올해 4월부터 시작된 이 파티는 한국인과 외국인 젊은이들이 친구를 맺고, 그러면서 서로 영어와 한국어 실력도 쌓는 것이 취지다. 하지만 한국인 젊은이들이 노골적으로 친구를 빙자한 '영어 과외 교사'를 찾는 것은 아니란다. 파티를 기획 및 주최하고 있는 영어강사 김명호 씨는 "한국인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외국인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때 '자신이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접근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외국인 젊은이들은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서로 제대로 된 교류를 할 수 없다. 자연히 대화도 사라진다"며 "먼저 친구가 돼야 한다. 그러면서 즐거우면서도 다양하고 깊숙한 대화를 통해 비로소 영어 실력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외국인 젊은이들은 활발한 교류 중

이렇듯 특별할 것 없는 외국인 젊은이들의 타지 생활도 한국인 젊은이들을 만나면 한층 다채로워진다. 그래서 지역 대학들도 '교류'에 방점을 찍고, 다양한 외국인 학생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경북대에는 2007년 교수와 재학생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만든 외국인 학생 도움 모임인 '친구친구'가 있다. 지금은 모든 대학에 일반화된 '버디' 프로그램(외국인 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인 학생이 학사업무나 학교생활을 도와주는 봉사 프로그램)의 초기 모델인 셈이다. 당시 학과마다 외국인 학생 비중이 급증했고, 친구친구 모임을 주도한 경북대 신문방송학과만 해도 신입생의 절반(15명)이 외국인 학생이었다. 이후 사정이 비슷한 다른 학과로도 모임 참여가 확대됐다. 이 모임은 단순히 한국인 학생들이 외국인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이외에도 함께 어학 스터디를 하고, 국내 명소를 견학하고, 축제에도 참가하는 등 다양한 교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외국인 학생들의 출신 국가가 점차 다양해지면서 지역 대학도 이들을 위한 유학 인프라를 맞춰가고 있다. 영남대는 지난 9월 국내 최초로 아랍권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아랍문화센터'를 열었다. 현재 영남대에 재학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등 아랍 국가 출신 외국인 학생은 모두 12명이다. 소수지만 이들을 위해 공부는 물론 한국인 젊은이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

그러면서 한국인 학생들 사이에 일부 있던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현상도 점점 엷어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 학생 비중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과는 국가 간 외교적 분쟁 사건이 있을 때마다 서로 혐한(한국 혐오)과 혐중(중국 혐오)의 시선을 주고받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인 학생 유입이 본격화된 지도 10년이 넘었고, 학생 수도 점점 늘어나면서 '이질적임'에 따른 '배타적인 시선'보다는 '익숙함'에 따른 '일상적인 교류'가 앞선단다. 대학생 이준호(24'경북대) 씨는 "학교에서 마련한 교류 프로그램은 물론 자발적으로 학생들끼리 교류하는 모임이나 수업이 늘면서 한국인과 외국인 학생이 캠퍼스 안팎에서 함께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본다"며 "외국인 학생들과 서로 취업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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