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문화의 산업화] 정선 콧등치기와 황기족발

손으로 뜯은 족발, 오동통 콧등치기, 푸근한 강원의 맛

황기족발은 일반 시중 족발과는 달리 각종 약초를 넣고 푹 고아낸 다음 손으로 뜯어서 접시에 담아 손님상에 낸다.
황기족발은 일반 시중 족발과는 달리 각종 약초를 넣고 푹 고아낸 다음 손으로 뜯어서 접시에 담아 손님상에 낸다.
곤드레밥, 황기족발과 함께 정선의 3대 향토음식 중 하나인 콧등치기의 소박한 상차림이다.
곤드레밥, 황기족발과 함께 정선의 3대 향토음식 중 하나인 콧등치기의 소박한 상차림이다.
메밀로 굵직하고 구불구불하게 면발을 만든 정선식 메밀우동
메밀로 굵직하고 구불구불하게 면발을 만든 정선식 메밀우동 '콧등치기'는 식혀놔도 면발이 꼬들꼬들하다.

콧등치기와 황기족발이 유명한 강원도 정선을 찾아가는 길은 한겨울이다. 벌써 알몸이 된 감나무마다 빨간 홍시만 알알이 맺혀 있다. 입동이 지난 아스팔트 포장길엔 낙엽이 겨울바람에 휘몰려 이리저리 나뒹군다.

메밀가루는 묵도 되고 냉면도 되지만 이곳에서는 '콧등치기'가 된다. 오동통한 면발이 콧등을 때리며 입안으로 들어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콧등치기다. 이름 하나로 전국에 명성을 날리고 있는 콧등치기는 향토음식 산업화를 위해서는 음식 이름도 비즈니스 못지않게 중요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독일 '슈바인학세' 버금가는 황기족발.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 동광식당(정선읍 봉양리 50의 3)을 찾았다. 정선역보다 더 유명한 역전식당이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여느 맛집과 마찬가지로 벽면은 온통 신문, 방송에 난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6시 내고향, 맛대맛, 투데이, 고향이 보인다. VJ 특공대, 잘먹고 잘사는 법, 좋은 아침입니다. 모닝와이드, 전국을 달린다 등등 이 집 콧등치기와 황기족발을 소개한 유명 방송 프로그램은 열 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가 없을 정도다.

"어서 와요. 날씨가 춥지요. 이리로 앉으세요."

동광식당 주인 송계월(68) 씨의 맏며느리 이현주(43) 씨가 강원도 말씨로 반가이 맞는다. 이 집도 가업이 30년을 이어 오면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중인 모양. 시어머니는 밭에 농사일을 하러 나갔단다. 열무와 배추, 상추, 무, 쑥갓, 고추 등 손님상에 오르는 각종 야채는 직접 농사지어서 쓴다고 자랑한다.

콧등치기부터 주문을 하니 먼저 황기족발부터 먹어 봐야 한단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먹어 봐야 맛을 알고 이유를 알지요"라며 대답은 않고 웃기만 한다. 이 씨는 "아무리 강원도 산골 음식이라고 해도 순서가 있어요"라며 손님의 요구를 묵살하지만 자신 있게 메뉴를 권유하는 모습이 당당하다.

황기족발은 정선지방에서 흔하게 나는 약초 황기를 한방 주재료로 넣고 삶아내 이름이 황기족발이다. 2시간 정도 가마솥으로 푹 고아 내는 황기족발은 일반적인 시중 족발과는 달리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뜯어 손님상에 올린다.

"족발 껍질이 가장 맛있지요. 요새는 콜라겐이라면 다들 꺼벅 넘어가잖아요."

잡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되레 한약초의 향기가 입안 가득하다. 돼지발톱마저 감칠맛이 난다. 족발의 껍질은 그저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다. 어떻게 족발을 이렇게 부드럽고 감칠맛 나게 하느냐고 물으니 "그게 바로 시어머니 비법"이라며 또 빙그레 웃기만 한다. 강원도식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콜라겐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이 씨다.

"손으로 들고 이렇게 새우젓에 찍어 봐요. 제대로 먹어야만 제맛을 느낄 수 있다니까요."

젓가락을 버리란다. 손가락을 써야 맛이 난다고 거들며 시범까지 보인다. 족발에는 새큼달큼하게 익은 총각김치가 딱 어울린다. 황기족발 맛의 추임새 역할을 한다. 곁들여 낸 부추 생절이도 고춧잎도 모두 상큼하게 무쳤다. 다 족발과 어우러지는 반찬이다.

"맥주 안주로 딱이에요. 손님의 90% 이상이 다 정선 이외의 지역에서 찾아오시지요."

주인 이 씨가 주문도 않은 맥주를 한 잔씩 따라 준다. 문득 독일 뮌헨 지방의 '옥토버 페스트' 맥주축제에 맥주 안주로 빠질 수 없는 족발요리 관광상품 '슈바인 학세'가 떠오른다. 축제를 찾는 지구촌 관광객들이면 꼭 먹고 가는 슈바인 학세처럼 정선 황기족발에도 이에 버금가는 관광자원화, 산업화 소재로서의 가치가 넉넉하게 내포돼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콧등치기' 이름 하나로 전국 인기몰이

황기족발을 다 먹어갈 무렵 드디어 콧등치기가 나왔다. 강원도스럽다고 해야 할 정도로 메밀가루로 만든 면발이 투박스럽게 굵다. 메밀국수라기보다 메밀우동 스타일이다. 면발은 우동 가락보다도 더 굵다. 같은 메밀가루지만 가늘고 질긴 춘천 막국수와는 또 다른 형태. 큰 냉면 사발에 가득 담아 낸 콧등치기를 먼저 간장을 치지 않고 먹어봤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식감은 면발이 오동통하고 꼬들꼬들하다. 목안에서 굵은 면발이 목젖을 자극하며 넘어가는 게 이채로운 식감이다.

"육수는 저희 집 된장으로 만들지요. 새우와 멸치, 소고기와 배추, 파, 감자, 애호박, 양파 등 각종 야채를 된장국물로 고아냅니다."

가마솥 장작불로 우려내는 콧등치기의 담백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국물 맛은 된장소면의 국물 맛과 비슷하지만 구수하기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이걸 강원도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황기족발과 콧등치기는 한우갈비와 된장소면의 음식궁합과도 너무 닮았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은 배추김치와 무청김치, 콩나물무침이 전부이나 사실 황기족발에 이은 코스요리 식이어서 추가 반찬이 별 필요가 없다.

"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 들여야 면발이 콧등을 치지요."

그냥 일반 국수를 먹는 식으로 젓가락으로 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으니 주인 이 씨가 또 거들고 나선다. 그 말에 일행은 전부 쪽 소리가 나도록 면발을 빨아 들인다. 면발이 쫄깃해서 소리는 잘 나지만 그래도 콧등을 치는 경우가 드물자 주인 이 씨가 시범을 보인다. 코 주변에 국수 국물이 온통 튀어 엉망이지만 콧등치기 시범에 열심이다. 일행들 사이에서 금방 웃음이 터져 나온다.

"국수를 가지고 '콧등치기'라고 이름을 붙이다니! '콧등치기국수'도 아니고 그냥 '콧등치기'라고?" 그제야 일행은 옛 정선 사람들의 슬기에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 이름 하나만으로 면발의 쫄깃함과 맛을 한꺼번에 다 표현하고, 이웃끼리 모여 별미로 재미나게 먹던 옛날 정선지방 화전민들의 음식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어려운 화전민 산골 살림살이였지만 이웃과 콧등치기 한 그릇씩을 나눠 먹으며 춘궁기 어려움을 견뎌냈으리라. 이는 맛도 맛이지만 튀는 이름과 재미나게 먹는 방법으로 향토음식의 전국적 인기몰이와 브랜드화에 성공한 사례로는 유일하게 손꼽을 수가 있다. 천천히 식혀가며 먹어도 꼬들꼬들한 면발은 붇지 않고 통통한 그대로다. 황기족발 식감과도 너무 닮았다.

◆손님 모두가 콧등치기 홍보요원

콧등치기와 황기족발은 정선의 곤드레밥과 함께 이 지방 3대 향토음식이다. 모두 산골마을 화전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토속음식으로, 누구에게나 어릴 적 고향집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러기에 이곳을 찾은 식도락가들은 정선 향토음식을 맛보고 돌아가면 누구나 한마디씩 하게 된다. 인터넷에 올리고 주변에 입소문을 내고. 그래서 그런지 이곳 식당 주인들은 손님 대하는 데 더욱 정성을 다한다.

"손님이 아니래요. 다들 우리집 홍보요원이래요. 그저 그 덕에 사는 거지요."

이 씨의 시아버지는 정선읍내서 약초상을 하고 있다. 황기와 함께 정선에서 나는 다양한 약초도 엄청나게 사용한다. 황기족발 소스용 1말들이 새우젓도 한 달에 30개나 쓴다고. 족발 원료값도 한 달에 1천만원씩 든다고 했다. 콧등치기 원료인 메밀은 평창산을 쓰는데 한 달에 20㎏짜리 50포대를 쓴단다. 포대당 가격이 7만~8만원.

12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의 콧등치기 전문집 동광식당 한 집만 해도 농민들이 생산해 낸 우리 농산물의 상당한 물량을 근거리에서 소비해주고 있었다. 열악한 산촌지방 농촌경제에 적지 않은 기여다.

향토음식 산업화를 통해 수입 농산물에 대응해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촌을 지킨다는 말은 콧등치기와 황기족발이 잘 증명해주고 있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