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는 '메디치 개론'이라는 새로운 과목을 2013학년도 정식 과목으로 개설한다. 필자를 비롯해 서로 전공이 다른 교수들이 함께 개설할 과목으로, 15~18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집안인 '메디치 가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메디치 가문은 과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적극 후원함으로써 피렌체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분과 학문의 경계를 초월한 융'복합 네트워크를 지원하여 르네상스라는 역사적인 창조의 시대를 여는 데 큰 몫을 한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정신에 부합한 융합 강의를 위해서 예술(미술, 건축, 음악), 인문학(국문, 일문), 사회과학(언론정보), 자연과학(산림, 식물), 공학(정보통신) 등을 전공한 9명의 교수가 의기투합했다. 이른바 '팀티칭' 방식이 적용된다. 우리는 각자의 전공에서 메디치 가문의 놀라운 업적을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조명하고, 현대적 상황에서 재해석할 것이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우리는 공통적으로 '메디치 효과'에 초점을 맞추기로 의견을 모았다.
'메디치 효과'는 유력한 가문의 영향력 있는 의견 지도자가 협력적이고 혁신적인 환경을 창조하는 데 앞장설 때 나타난다. 대표적 사례로 미켈란젤로를 들 수 있다. 그가 천재성을 발휘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배경에 메디치 효과가 있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출간한 프란스 요한슨의 저서인 '메디치 효과'는 메디치 가문의 정신을 기업 경영에 접목하여 주목을 끌었다. 저서의 부제인 '아이디어, 개념, 문화의 교차로에서 새롭게 발견된 통찰력'에서 요한슨이 강조하여 말하듯, 이질적 요소들의 만남이야말로 기발한 생각의 폭탄을 점화할 수 있다.
사실 메디치 가문이 활동했던 당시는 근대성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근대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개념과 사상은 동질성, 수직적 관계, 보편주의, 국민국가, 유일신론 등이다. 메디치 가문은 동방과 서방,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플라톤주의를 뒤섞는 이질성을 추진함으로써 근대성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요한슨의 지적처럼 통신학자가 생물학자를 만나면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 예컨대 통신학자는 음식 배달을 위한 가장 효율적 통로를 만드는 곤충의 행위에서 정보시스템 설계의 최적 법칙을 찾을 수 있다.
한편 메디치 개론 강의를 준비하면서 두려움이 생긴다. 학생들은 이 강의를 우리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따분한 이론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근대성의 모순을 충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소속된 대학의 자율전공 계열의 경우, 본래 취지인 융'복합적 인력 양성 기능을 점차 상실하고 인기 학과를 가기 위한 우회 통로가 되고 있다. 대학 밖은 어떠한가.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수도권으로 집중된 경제구조, 이질성에 대한 배타성, 국가주의적 정치 관행, 재벌과 중소기업의 수직적 상하관계에 맞닥뜨리게 된다.
당장 목전에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탈근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남녀 분리의 이분법적 프레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여성 대통령론을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프레임은 케이블TV에서 방송한 황상민 교수의 선정적 비평을 계기로 점입가경이 되고 있다. 다른 한편 낡은 정치 시스템의 변화와 개혁을 외친 후보는 자신이 비판한 기성 정당의 도움 없이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워 보인다. 모두가 정치공학적인 셈법으로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메디치 효과는 생소한 것처럼 보이는 사물과 현상이 결합할 때 발현된다. 상이한 분야의 수평적 교류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엉뚱한 생각이 위대한 발견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용도 절실히 필요하다. 상대방의 시각이 자신의 가치와 다를지라도 받아들이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상대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에 따르면, 여러 페르소나(persona)를 인정할 때 문화적 다원성을 꽃피울 수 있다. 여기에서 페르소나는 생물학적 얼굴이 아닌 사회적 얼굴을 말한다. 한국 사회가 다양한 사회적 얼굴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메디치 개론은 학생들에게 '소귀에 경 읽기'가 될지도 모른다.
영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사이버감성연구소장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