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치영화 봇물… 어두운 과거사 향해 날리는 '돌직구'

'다음 대통령 그랬으면…' 기대 심리에 '광해' 대박

18대 대선을 앞둔 요즘 정치성을 띤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영화
18대 대선을 앞둔 요즘 정치성을 띤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남영동 1985
남영동 1985
만화가 강풀 원작의 영화
만화가 강풀 원작의 영화 '26년'

정치와 영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탄생 초기부터 정치적 선전'선동을 위한 최고의 도구로 발전해 온 영화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정치적 기능이 최근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18대 대선을 앞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성을 띤 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올해 대종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천만 관객을 동원해 정치영화 전성시대의 재개막을 알렸다. '광해…'를 시작으로 '남영동 1985'와 '26년' 등 과거사를 소재로 한 정치영화들이 이달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MB의 추억'과 용산사태를 다룬 '두 개의 문'은 정치적 색깔이 훨씬 짙다.

'광해…'는 대선을 앞두고 개봉하면서 관객이 쏠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시나리오가 수년 전에 완성됐기 때문에 올해 대선에 출마한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은 아니라는 게 제작사의 입장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진짜 임금(광해군)을 대신한 광대 하선(이병헌)이 광해군보다 더 백성을 위하는 모습을 보면서 관람객들이 '다음 대통령이 그랬으면…' 하고 기대하는 심리를 이끌어 낸 게 대박의 기반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후보 단일화를 앞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도 페이스북에 오르내리면서 화제가 됐다.

22일 개봉을 앞둔 '남영동 1985'는 옛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남영동 대공분실이 고(故) 김근태 전 의원에게 자행한 22일간의 고문 기록을 고발하는 영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독재정권의 실상을 스크린 속에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영화를 제작한 정지영 감독은 "정치색이 짙다는 이유로 배급사가 나서지 않는다면 직접 뛰겠다"는 뜻을 밝히며 대선 직전 개봉하려는 정치적 의미를 감추지 않았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공개되면서 화제를 모았지만 배급사가 없어 개봉이 미뤄졌다.

인기 만화가 강풀 원작의 '26년'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피해자 가족들이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벌이는 치밀한 복수극이다. 2008년 배우 캐스팅을 완료하고 촬영에 돌입하려다 갑자기 투자가 철회되면서 촬영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7억여원의 제작비를 모아 촬영을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엠비(MB)의 추억'은 17대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의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통해 MB정부 5년간을 되돌아보는 정치풍자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독재시대에 가장 강력한 선전'선동의 수단이었다면 대선을 앞둔 정치영화는 민주화가 정착된 지금도 여전히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면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겨눈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있는 와중에 고(故)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도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제작사의 사정으로 대선 전 공개는 어려워졌다는 후문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대선 정국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엄청난 영향력과 파괴력을 불러올 수 있다. 영화는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크린에 노골적으로 녹아 있는 과거사가 대선판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어떻게 자극할지 주목되는 것이다.

2008년 제작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미국 영화 '스윙보트'는 흔히들 선거캠페인으로 활용하는 '당신의 한 표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구호를 영화로 만든 고급 정치영화로 꼽힌다. 양당제가 정착된 미국에서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무당파의 한 표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좌우한다는 설정은 코믹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이전에도 광주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 한 '화려한 휴가' '효자동 이발사' 등 정치색 짙은 영화가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과는 달리 노골적이진 않았다. 그런데 요즘 개봉되는 정치영화는 직설적이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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