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성영관 영천문화원 원장

젊은날 술자리 안줏거리 잦던 영천 폄하, 자존심 상해 고향 바꾸기 '평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성 원장은 영천의 문화'역사'이야기 꿰기에 앞장서고 있다.

영천(永川)은 역사'문화의 보고다. 불교'유교 문화에서부터 청동기 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보유한 지정문화재만 해도 국보 1점, 보물 16점, 지정문화재 50여 점 등으로 대구가 보유한 역사'문화에 뒤쳐지지 않는다. 문화유산이 많은 만큼 문화재와 문화유적을 아끼고 사랑하는 연구자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단체도 여럿이다. 이 모든 영천 문화를 아우르며 바탕이 되고 중심이 되는 곳이 영천문화원이다. 성영관(76) 영천문화원 원장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고 할 일 또한 많다. 때 이른 칼바람이 부는 5일 영천문화원을 찾았다.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건강한 외모에 동네 어르신처럼 너그럽고 따뜻했다.

◆영천 역사'문화의 수문장

영천에서 태어나 줄곧 고향에 살면서 영천문화 창달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영천 역사'문화의 수문장이다. 영천문화원에서 일한지 올해로 25년째다. 2008년 원장에 취임한 이래 5년째 영천문화 발굴'보존을 진두진휘하고 있다

문화원장을 맡은 후 그야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취임과 동시에 낡은 문화원을 깔끔히 리모델링했다. 도서관에 이동식 서가를 설치해 분류'정리하고 바코드 작업과 열람실을 정리했다. 향토사료 발굴에서 수집, 그리고 조사활동 등 다양한 지역 문화 행사 개최 등 문화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요. 아무리 많은 문화'역사 유산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잘 보존하지 않는다면 골동품에 불과하지요."

특히 문화원 내에 향토문화연구소를 설치해 독립운동사, 충효정신, 사진으로 보는 문화재 이야기, 문화유산 답사기, 영천을 빛낸 인물 모음집 등의 책자 발간 사업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개원 당시 정재진 소장, 조순 대구대 교수, 이재수 문학박사 등 향토사학자들을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도 마다 않았다. "영천에 살면서도 영천을 알지 못했던 주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영천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길 때 진정한 지역 문화를 꽃피울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별빛문화봉사단을 만들어 영천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 별별마을 축제, 지역 문화 체험 사업, 문화교실 운영, 문화유적 답사, 향토사 발간 사업을 통해 문화 발전과 시민 정서 함양에 힘써 왔다. 문화원장에 재선된 올해부터는 해외 문화 교류에도 앞장서고 있다. 문화원 지원 육성 조례안 만들기에 나서 지방문화원 발전 장기 종합 계획안을 만들 예정이다. "문화원은 지방문화의 구심점이자 뿌리입니다. 지방문화를 살리지 않으면 진정한 지방화가 이뤄지지 않죠."

◆영천 이야기를 만들다

"산과 들, 그리고 마을마다 사람마다 나무마다 저마다의 의미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요."

성 원장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영천 곳곳을 찾아다니고, 마을 주민들을 만난다. 지역의 역사와 이야기,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을의 문화를 살리고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일도 그가 하는 일 중 하나다. 지역 문화 축제를 기획'지원했으며 특색 있는 영천을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지역에 어떤 문화유적이 있는지 주민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먼저 주민들이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의 문화적 역량을 키울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지요."

최근에는 주민들의 숨결과 땀이 묻어나는 마을 곳곳을 돌며 영천 이야기도 연구하고 있다. 조상들이 어떻게 이 땅에 정착했고 살아왔는 지, 땅과 주민들은 어떻게 하나가 되어 갔는지에 대해서 연구하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성 원장의 이 같은 열정에 문화원 이원석 사무국장과 지역 문화 연구가 하응두 선생도 동참하고 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잊힐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조급증이 생깁니다. 수십 곳의 마을들을 돌아다보니 이제는 일 자체가 즐거워졌고 사명감까지 느낍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실이 책 '영천문화유산답사기', '영천지명유래와 마을변천사', '영천인물사' 등이다. "너무 빨리 변하니까 더 변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정리해 두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길과 역사, 사람들 사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소소한 골짜기의 이름까지 자료를 정리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죠."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실력을 발휘해 영천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영천은 예로부터 이수삼산의 청정한 고장으로 이름나 있지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세입니다. 산 동쪽에서 발원하여 영천의 동쪽을 흘러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자호천과 서남쪽 유봉산 밑 동경도에서 합수되는 고현천을 '이수'라하고 보현작산과 마현산, 유봉산을 '삼산'이라 칭하지요." 그의 설명을 듣자니 영천 곳곳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안동양반, 경주사람, 영천놈들'

성 원장은 문화'예술계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문화나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다.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이끌어 가야 할 문화원장으로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약점이다. 그래서인지 문화원장으로 취임할 때 성 원장의 자질에 의구심을 품는 불만세력(?)들도 많았다.

"꼭 문화'예술계 출신들만 문화원을 운영하라는 법이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지역 문화를 사랑하고 이를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지요. 아쉽게도 문화원장이라는 자리를 명예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성 원장의 영천사랑은 남달랐다. "영천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한학에 빠져 고서적을 접하고 역사를 공부했지요. 대륜고에 다닐 때는 시문학에 취미가 있어 시를 지어 담임 선생님에게 제출해 평가를 의뢰한 적도 있었습니다." 고교 시절 단짝이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밤새 문학과 예술을 논할 정도로 문학소년이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된 터라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고교 졸업 후 호구지책을 찾아야만 했다. 대양산업㈜란 곳에서 주류도매 일을 하기도 했고 식품 체인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에 성공할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목마름은 깊어만 갔다. 그러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그를 문화'예술계로 전향시켰다.

"경북지역의 문화가 안주였는데 '안동양반, 경주사람, 영천놈들'이라는 얘기를 듣게 됐지요. 영천 출신으로 자존심이 상했지요. 원래 이 말은 한국전쟁 당시 각지의 사람들이 영천에 피난을 왔고 전쟁통에 고생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말인데 아직까지 영천을 폄하하는 말로 쓰이고 있지요."

성 원장은 사업을 정리하고 영천문화원 이사로 부임해 본격적으로 영천의 문화와 역사 알리기에 나섰다. 1987년부터 영천문화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25년째다. "최근에는 각종 축제 등을 통해 지역을 찾는 사람이 많아 지고 직접 영천에 와보니 '역사와 문화의 보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게 돼 보람을 느낍니다."

◆지방문화를 살리자

'지방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이 성 원장의 고집스런 생각이다. 그래서 지역 축제와 예술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학교를 개설해 문화유산해설사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 문화학교를 열어 '문화재 가이드반'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영천의 얼이 담긴 문화재, 민요, 풍물, 고전무용, 풍수지리 등 다양한 내용을 가르쳤다. "영천에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위패를 모신 임고서원과 고려 말 최초로 화약과 로켓 무기를 만든 과학기술자 최무선 장군 생가터,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선구자 노계 박인로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도계서원,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거조암 영산전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또 충효교실, 역사문화탐방, 문화재 답사 및 지킴이 활동,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열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와 슬기가 깃든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가치있는 사업입니다. 전통문화를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그동안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지역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란 사람이 지역 문화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건 당연한 일이죠. 지역 문화 부흥에 바람을 일으키는 '풍구잡이'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머릿속에 늘 영천과 영천문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성 원장의 영천사랑은 진행형이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성영관 원장은 =영천에서 태어났다. 금호초교'영천중학교'대륜고를 졸업하고 주류유통업에 뛰어들었다. 1987년 영천문화원 이사를 시작으로 부원장을 거쳐 문화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교육사업과 사회봉사에서도 열성적이다. '2012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로 선정돼 지난달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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