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홀수다/ 김별아 지음/ 한겨레 펴냄
베스트셀러 '미실'의 작가 김별아 씨가 산문집 '삶은 홀수다'를 펴냈다. 어릴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갖게 된 단상들을 묶어서 낸 책이다. 40대 중반의 작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세상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한국인으로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생각을 써놓았다. 그래서 이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김별아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들의 이야기'다.
동시대인들은 같은 세월을 살아가지만, 각자 입장에 따라(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는 입장이기도 한)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김별아는 김별아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기에 그 생각에 다 동의할 수는 없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목청을 높이며 강요하지는 않는다.
TV 프로그램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떼쟁이, 욕쟁이, 심술쟁이, 악동, 울보와 같은, 이른바 애먹이는 아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김별아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말썽쟁이 아기 뒤에는 나쁜 부모가 있다"고 말한다. 1차적으로 엄마가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에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쁜 엄마' 뒤에는 '나쁜 아빠'가 있고, 그들 뒤에는 그들이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할 수 없도록 만든 '현실'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결국 '부모가 달라졌어요' '세상이 달라졌어요'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TV 프로그램의 악동 아기는 결국 '악동 현실'에 대한 경고라는 것이다. 나쁜 부모와 떼쟁이 아이의 개별적 단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곰곰이 씹어야 할 대목이다.
지은이 김별아는 고교 시절까지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다. 나이 마흔이 넘은 그녀는 이제 막 수능시험을 끝낸 고3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말한다. '여태껏 받아들고 한숨짓던 성적표의 등수 따위는 잊어버려라. 지금은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진짜 공부-세상 공부, 사람 공부, 인생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걸신스럽게 공부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수능시험이 끝났다고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진짜 공부는 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 지은이의 이 충고를 '학교 공부 대충 해도 인생 공부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오해할까 봐 걱정은 된다.
사실 학창 시절 공부 안 하면 사회에 나와서 더 힘들어진다. 학창 시절이 끝났다고 해서 그 시절까지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과 안 했던 사람이 똑같은 출발점에 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명확히 구분되는 출발점에 선다. 그러니 '지금까지 성적은 다 잊어라'는 작가의 말은 '학교 공부 열심히 했다고 개기지 마라'이며, 더 나아가 '학교 공부 열심히 안 했으면, 세상 공부 더 열심히 해라'는 말로 읽어야 한다. (학창 시절 공부 열심히 안 했다가 욕보는 독자의 말이니 믿을 만하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는 다시 여러 개의 단상으로 나뉘어 있는데, 지은이가 일간신문에 썼던 칼럼에 약간의 상황 설명을 곁들였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용산 철거민의 이야기에서는 철거민과 철거 작전에 투입된 경찰을 동시에 바라본다. 편파방송 항의시위 중인 재향군인들의 군모 바깥으로 삐져나온 백발을 보며, 군복을 벗으면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마는 노년을 생각한다. 때때로 위태롭기는 하지만 어느 한쪽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으려 애쓴 흔적과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무리 짓는 것이 어려워 혼자였던 지은이는 "지금도 여전히 혼자지만, 나이가 들면서 혼자이기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며 "삶은 어차피 홀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기에 놀라거나 쓸쓸해할 필요는 없다. 외로워져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283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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