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느리게 읽기] 카뮈가 스승 그르니에와 주고받은 '우정·사색'

그르니에 서한집(1932∼1960)/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지음/김화영 옮김/책 세상 펴냄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세계문학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두 빛나는 지성이 평생 동안 주고받은 우정과 사색의 편지 235통)라는 문구를 접하면서 세 가지가 떠올랐다.

그림 1점과 영화 2편이다. 스승과 제자는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자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혹한에도 꿋꿋하게 서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린 '세한도'는 추사(秋史) 김정희와 그의 제자인 이상적의 아름다운 우정을 한 점의 그림에 담아낸 작품이다. 스승의 유배 당시 제자 이상적은 중국으로 사신으로 갈 때마다 구하기 힘든 서적들을 구해 보내줬고, 추사 김정희는 이 책들을 벗 삼아 유배생활의 외로움을 달랬다.

영화 2편은 바로 '굿 윌 헌팅'과 '만득이'. 두 영화 모두 스승과 제자의 좌충우돌 친구 같은 사랑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영혼의 교감에는 나이와 계급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굿 윌 헌팅'은 대학 교수와 제자의 관계며, '만득이'는 고교 교사와 제자의 관계다. 두 영화의 주인공에는 로빈 윌리엄스와 맷 데이먼, 김윤석과 유아인이 등장해 갈등과 우정 속에 감동을 묘하게 버무려내고 있다. 맷 데이먼과 유아인이 스승을 대하는 자세는 다소 건방지게 비쳐질 수 있지만 진심이 담겨 있기에 스승은 감동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책으로 보고 싶다면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강력 추천한다. 반항하는 인간 알베르 카뮈와 따뜻한 회의주의자 장 그르니에. 이들은 알제리 빈민구역의 병약한 소년과 젊은 교사로 만나 공감과 차이 사이에서 서로의 길을 걸으며, 평생토록 서로의 생을 빛으로 채워주는 대화를 나눴다.

카뮈가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르니에에게 관심을 더 가지면서 이 책을 보면 좋다. 그르니에는 알베르 카뮈의 고교 시절 은사로 카뮈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으며, 자신도 20세기에 인상적인 족적을 남긴 에세이스트이자 철학자였다.

이들의 서한집이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카뮈가 47세의 나이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카뮈는 19세 때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스승 그르니에와 235통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카뮈가 112통, 그르니에가 123통을 썼다. 카뮈는 스승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더 크게 성장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1933년 카뮈는 스승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을 읽고, '고독'이라는 바로 그 언어를 발견하게 된다.

28년 동안 위대한 지성으로 평가받는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은 영감과 자극 그리고 지적'예술적 궤적을 엿보고자 한다면 이 책을 찾는 것도 좋을 것이다. 460쪽, 1만7천800원.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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