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농업의 미래를 찾아서] <4> '마을'에서 답을 찾다 ②

지역 특성 따라 '마을 영농' 3가지 형태 추진…주민 참여에 '성패

일본 히로시마현 세라정은 집락영농을 통해 농지를 규모화했다.
일본 히로시마현 세라정은 집락영농을 통해 농지를 규모화했다.
2006년 설립된
2006년 설립된 '히지리사토' 법인은 올해 드레싱 가공장을 세워 20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일본은 고령화 등 농업과 농촌의 위기에 대응해 '집락영농' 정책을 펴고 있다. '집락영농'은 영세한 개별 농가들의 농지를 마을 단위로 묶어 하나의 법인 경영체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농지 이용의 효율성이 높아졌고 생산비용이 감소했다. 남는 일손은 가공과 유통 부문에 투입하면서 마을 전체의 수익도 늘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경상북도는 일본의 '집락영농'에서 농업의 미래를 위한 힌트를 얻었다. 경북도는 '집락영농'을 지역 실정에 맞게 고친 '마을영농'을 내년 초부터 도입한다.

◆히로시마현 세라정의 도전

일본 히로시마현 세라정은 마을 단위의 영농법인을 통해 농업과 농촌의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다. 278㎢ 면적의 세라정에는 지난해 말 현재 1만7천888명이 살고 있다. 경북 영양군과 비슷한 인구다. 세라정은 전체 6천729가구 중 2천486가구가 모두 2천301ha의 농지를 경작하고 있다. 특히 1ha 미만의 소농이 전체 농가의 59%에 달하는 작은 중산간 마을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일본식 마을영농인 '집락영농법인'이 32개나 된다. 법인들은 영세한 개인농가들의 농지를 한 곳으로 모아 규모를 키웠다.

세라정의 영농법인은 '전체 농가 참가형'과 '전업농 주도형'으로 나뉜다. 전체 농가 참가형이 28곳으로 4곳에 불과한 전업농 주도형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농가 참가형'은 한 지역 내 농가 대부분이 법인 구성원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각 농가가 보유한 농지는 하나의 법인으로 합쳐 공동 경작하며 수익을 배당 형식으로 분배한다. '전업농주도형'은 농지를 임차한 소수 농업인이 법인의 구성원이 돼 경영을 하는 방식이다. 법인은 농지 주인에게 임차료만 지불하면 된다.

전체농가 참가형 중 대표적인 법인은 '히지리사토'다. 2006년 설립한 이 법인에는 현재 2개 마을, 43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쌀 재배논이 2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아스파라거스(2㏊)와 대두(1㏊) 등 밭작물도 일부 경작한다. 올해 초에는 드레싱 가공 공장을 세워 20명의 일자리도 만들었다. 법인 구성원들이 시급으로 800여엔을 받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한다.

전업농 주도형에는 2007년 설립한 '메구미'가 있다. 전업농 3가구가 주도해 인근의 농지를 임차해 농사를 짓고 있다. 전체 경작 면적 35㏊ 가운데 쌀이 25ha로 가장 비중이 높다. 양배추 등 채소도 10㏊가량 경작하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4천만엔 규모다. 메구미 법인은 농기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오퍼레이터와 일반작업자 등 4명을 시급 1천엔에 고용한다.

미야사코 스네야(50) 메구미 법인 대표이사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양배추 재배를 확대하고 브랜드도 도입할 계획"이라며 "현재 인력과 기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적정 재배 면적이 50㏊인 점을 감안해 경작 규모도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집락영농'으로 미래를 본다

농촌 마을에서는 흔히 구입 비용이 부담스러운 농기계를 공동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농가별로 농기계의 사용 순서나 시간을 조정하기 쉽지 않다. 농지도 떨어져 있어 연속 작업이 쉽지 않고 농가마다 재배 작물도 달라 농기계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일본의 '집락영농'은 이처럼 농기계 사용 시 발생하는 비효율성을 단일 법인을 통해 개선하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집락영농'은 주민들의 출자를 바탕으로 한다. 농지 소유자는 농지를 집락영농에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다. 농기계 소유자도 기계를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다. 남는 노동력은 집락영농에 취업해 임금을 받는다.

법인은 대표자 또는 조합장인 리더와 농작업을 담당하거나 농기계를 운전하는 오퍼레이터, 마을의 농지 임대자, 고령자 및 여성들로 구성된 보조 작업자 등으로 구성된다. 농기계 임대와 농작업 수'위탁, 농업생산, 농산물 가공 및 유통, 소비자와의 교류, 직거래 등 1차 생산은 물론 2, 3차산업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집락영농의 가장 큰 효과는 농지를 한곳으로 모았다는 점이다. 농지가 분산된 개별경영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보완해 경작지를 단지화하고 농기계를 공동 이용함으로써 생산비용을 줄였다. 일본 농림수산성의 2006년 경영통계에 따르면 37농가 30ha를 기준으로 생산비를 비교한 결과, 집락영농은 개별경영에 비해 생산비용을 47%나 절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경영을 집락영농으로 전환할 경우 경영비와 물자비, 원자재비 등 생산비용을 연간 1만2천140만엔에서 5천500만엔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별 농가의 경우 생산량이 높은 농지만 집중하고 나머지 농지는 경작을 포기할 우려가 있지만 집락영농은 지역 단위 전체를 경작하기 때문에 농지를 보전'관리하는데도 유리하다.

일본 정부도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농림수산성은 집락영농이 법인화했을 경우 소득 보상제도를 통해 1법인당 40만엔을 지원한다. 법인에 필요한 농기계를 도입할 때 경비를 50% 이내로 보조하고, '경영체육성강화자금', '농업근대화자금' 등 저금리 장기 대출을 지원한다.

◆경북형 마을영농의 성공 조건은?

경북도는 지역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해 '마을주도형'과 '농협참여형', '기업주도형' 등 3가지 형태로 마을영농 육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을주도형'은 주민의 다수가 참여하는 형태로 직접 이사와 감사, 영농 등을 맡는다. 마을 농지를 모아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를 법인이 결정한다. '농협참여형'은 지역 농협이 일부 출자를 통해 마을영농 법인에 참여하거나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한 뒤 조합원들에게 농지를 위임받아 직접 영농활동에 나서는 형태다. '기업주도형'의 경우 기업이 농민들에게 농지를 빌려 식품 제조와 유통과 관련된 품목을 재배한다.

경북형 마을영농의 성패는 주민 참여에 달려 있다. 일본의 경우 1970년대부터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농가별로 일정 비율을 쌀 이외의 작목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토지 소유자와 경작자가 참가하는 '농지이용개선단체'라는 조직을 만들어 주민 합의를 도출했다. 농지이용개선단체는 훗날 집락영농으로 발전하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마을 내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경북도는 마을 구성원 전체의 참여가 부족한 곳은 사업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특히 경작 면적 기준으로 50% 미만이 참여하거나 개별영농 형태의 작목반은 배제된다. 임주승 경북도 농정기획담당은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앞으로 법인의 운용 방침이나 경리 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을영농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리더와 농지정리도 필요하다. 김태곤 한국농업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리더는 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활용 가능한 마을의 자원을 조사하고 주민 합의를 이끌어내 실행해 나가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경지정리를 통해 농지의 규모화와 농기계 효율성을 높이고, 마을 내의 재배 작물과 작물별 재배 농지, 위치를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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