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명랑의 둘레

#명랑의 둘레 ---- 홀로 산길을 걷다 자주 발걸음을 멈추는 곳

두루미천남성 군락이 있지

긴 헛줄기 끝에 긴 모가지를 쑥 뽑아 올리고

외로이 먼 곳을 응시하는 듯한 두루미를 닮아 친해졌지

가시덤불과 바위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하는

울퉁불퉁한 오르막길을 헐떡이며 걷다

호젓한 꽃그늘에 앉아 숨을 고르다 보면

외로움이 출렁, 온몸을 흔드는 순간도 있지만

그 입석(立石) 같은 외로움이

또 한 번 출렁, 한 무더기 빛살로 쏟아지기도 하네

홀로 피어난 것이 홀로 가는 것들을 감싸는

환한 둘레가 되는 일

뒤에 두고 온 두루미천남성이 던져준 빛이네

되짚어 산길을 내려오다 보니

이미 오래 전 입적해 버린 듯

산길에 흩어진 새의 주검 위로

나뭇가지에 열린 새들 뱃종뱃종 명랑의 둘레가 되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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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신 시를 배워야 하는 이유 몇 가지 중에 '새, 짐승, 풀,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때의 이름이란 것은 사전에서 배우는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사물과 나의 관계 맺음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 시에 두루미천남성이라는 식물이 나오지만, 무관심한 우리에겐 무의미한 이름일 뿐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정말 두루미처럼 생겼습니다. 그러자 외로움을 감싸는 '환한 둘레'의 의미도 알 듯합니다. 시를 배워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봅니다.  

박현수<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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