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부모 혹은 학부모

수백 개의 눈동자가 유리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곳에서 하나둘씩 빠져나옵니다. 밖에는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병사들을 맞이하듯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정적이 흐르고 풍경은 정지해 있고, 아이가 면접을 보러 고사장 안으로 들어간 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초조해진 마음에 서 있던 자리를 맴돌아봅니다.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나뉘어 치러지는 요즘의 대학 입시는 날씨까지 꽁꽁 얼어붙게 하던 예전의 입시에 비해 긴장의 강도가 덜해진 건 사실이지만, 횟수가 많아졌기에 수험생 학부모의 체감 긴장량은 오히려 더 커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둘째 아이는 어려서 주의력이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지갑, 신발주머니 등 자신의 소지품을 잃어버리기 일쑤였고, 시험은 항상 문제를 끝까지 읽지 않고 답을 적었습니다. 답안지 검토는 절대로 하지 않았고 시험지 뒷장을 풀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시험 준비는 대충, 다 했다며 책장을 덮곤 했지요.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성향은 어디서 온 걸까요. 남편과 제 몸속 아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인자 하나가 아이의 몸을 빌려 깨어난 걸까요.

혹시 주의력결핍장애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간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의 상태는 다행히 병이라고 할 만큼의 범주에는 들지 않았지만 그 점에 관해서는 두고두고 주의를 주어야 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도 말이지요.

모든 과목을 잘해야 되는 제도 안에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과목에 뒷걸음질을 치는 아이. 아이의 공부를 직접 가르쳐 보았습니다. 자녀의 공부를 화내지 않고 잘 가르칠 수 있는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아이를 학원에도 보내보았습니다. 아이는 학원을 건성으로 다녔습니다.

공부와는 상관없는 듯한 일에 시간을 쏟고 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가 관심을 두는 영역에서 아이에게 꿈을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아이는 막연하게나마 자신의 꿈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지원 자격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아이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전보다는 더 열심히 말이지요. 과외를 시켜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는 혼자 힘으로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학과에 소신 있게 지원을 했습니다. 면접을 보러 가는 날 기차 안에서 아이와 면접에 나올 법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지요.

세 시간 반이 지나서 아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밖으로 나온 아이는 엄마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면접을 잘 치르고 나온 듯한 아이가 대견스러워 보였습니다. 아이에게 그동안 들인 노력에 대해 칭찬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만일 과외를 했더라면 열심히 안 했을 것 같아요. 혼자 하니까 절박한 느낌이 들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실수할 것 같아서 아이를 못 미더워했던 엄마. 아이에게 작은 성취의 기회를 더 많이 마련해 주고, 더 많이 믿어 주고, 더 많이 격려해 주고, 더 많이 기다려 주어야 하는 거였는데, 너무 늦게 알아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잘 자라준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답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라고 한답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답니다.'

이제는 아이가 멀리 보는 것을, 꿈을 꾸는 것을, 그리고 함께 가는 것을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역 입구에 세워진 사진에서 진흙쿠키를 들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았습니다.

'사랑의 나눔이 생명을 구합니다.'

아이를 낳은 엄마는 아이를 낳고 4개월이 지나면 뇌의 회백질 및 다양한 부분에서 크기의 변화를 갖게 된다고 합니다. 보상 및 감정에 관한 영역 등에서 말이지요. 수십 년 아이를 키운 엄마의 뇌 구조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모여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발걸음은 어느새 그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백옥경/구미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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