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에 사는 케빈 노이만(35) 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식료품 쇼핑을 한다. 노이만 씨가 찾는 곳은 집 근처 협동조합 매장 'MIGRO'(미그로)다.
그가 미그로를 이용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2살 된 아들 루카스에게 먹일 식료품을 고를 때 신뢰도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노이만 씨는 "미그로에서 판매하는 농산물에는 어느 지역, 어느 농장에서 재배한 것인지 표시돼 있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우리나라 만큼이나 대형소매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스위스의 대형소매점들은 우리나라 처럼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가 아니라 협동조합 매장이다. 인구 700만 명 중 500만 명이 협동조합 조합원이다 보니 스위스 사람들은 장을 보러 갈 때 "미그로(코프) 가자"는 말이 자연스럽다.
◆협동조합의 왕국 스위스
2008년 스위스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계적은 대형마트 체인인 까르푸가 스위스에서 철수를 선언한 것이다. 미그로와 코프 두 협동조합과의 경쟁에서 밀린 탓이다.
까르푸가 운영하던 매장 12곳은 코프가 모두 인수했다. 이처럼 스위스의 협동조합은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으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의 협동조합 사랑은 유별나다. 미그로와 코프가 보유하고 있는 조합원 수는 인구의 70%가 넘는 500만 명. 식품시장 소비점유율은 40%가 넘는다.
미그로의 창업자인 고트리프 두트바일러는 스위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2위로 꼽히기도 했다. 그가 스위스인들로부터 중요 인물로 꼽힌 이유는 1925년 사기업으로 시작한 미그로를 1941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스위스 사람들에게 기부한 셈이다.
미그로는 600개 매장, 직원 8만3천 명, 2010년 기준 총 매출 32조원을 올린 스위스 최대 소매기업로 성장했다.
미그로에 이어 업계 2위인 코프도 스위스 국민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코프는 직원 5만3천 명, 2010년 매출 29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2008년 까르푸 철수 당시에도 12개 매장의 직원들을 그대로 고용했다. 우리나라의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하면서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역경제에 힘이 되는 협동조합
스위스 곳곳에는 미그로와 코프의 옥외광고를 볼 수 있다. 그 중 미그로의 광고는 'aus der region, fur die region'이라는 문구를 강조하고 있다. '지역에서부터 지역으로'라는 이 문구는 미그로가 지역에서 생산된 농식품을 판매한다는 점을 홍보하는 것이다.
실제로 스위스는 미그로 직거래를 하는 농장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취리히 외곽에 위치한 'Eymman Gemuse'(이만채소) 농장도 미그로에 각종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고 있다. 농장에서 공급되는 생산물의 절반 가량은 미그로에 제공하고 나머지는 농장 직판장을 만들어 인근 주민들에게 판매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안토넬라 이만(68'여) 씨는 "주변 농장들 대부분이 이런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며 "미그로는 직판장에서 판매하는 수준의 가격으로 제품을 가져가기 때문에 소득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미그로는 스위스 전역에 있지만 중앙집권적이라기보다는 지역협동조합을 지향한다. 지역본부가 자체 결정 권한을 갖고, 또한 여러 위원회를 두어 공동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모델이다.
지역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1년에 1억프랑(약 1천286억원) 이상을 교육과 문화에 투자한다. 그 중 하나가 '미그로클럽 스쿨'이다. 지역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으로 1년에 45만 명이 이용한다. 좀 더 저렴하게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수강료 일부를 미그로에서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그로 취리히 중앙역점 점장 엠마 베버 씨는 "미그로는 '스위스를 위해, 스위스인을 위해 존재하는 협동조합'"이라며 "지역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운영 방식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스위스 국민의 애착이 상당하고 이 때문에 2008년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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