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대구, 결코 보수적이지 않다.

대구시 외곽 순환 고속도로 중 상인~범물 구간이 2012년 말 개통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월배지구의 개발이 곧 완료되며 2014년 8월에는 대구테크노폴리스 진입 도로가 대구시 외곽 순환 고속도로와 상인 지역에서 연결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인, 진천 지역의 교통대란이 예상되며 고가도로 건설 등 다양한 논의가 신문과 TV에서 제시되고 있다. 대구시가 발전하고 새로운 외부 환경과 내적 변화에 처하면서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문제들에 직면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대구시의 산업구조 변화, 주민의 인구구조 변화, 그리고 대구시의 물리적 경제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대구시는 앞으로도 상인 지역 교통 혼란과 같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즉, 시민의 생존권이나 자유권 등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삶의 질과 복지 수준과 관련한 구체적인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법은 무엇인가? 난 실학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질적 품성에 대한 깊은 애정을 토대로 현실에 직면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고자 접근하는 실질적 노력, 그것이 실학인 것이다. 대단히 철학적이고 본질적이며 오소독소(orthodox)한 접근이나 학문적 태도와 대조되는 개념인 것이다. 현실에 직면하는 문제에 집중해 인간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를 토대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실학이다. 이번 상인지구 교통대란에 접근하는 대구 언론의 접근 방식에서 실학을 발견하고 혼자 매우 반가웠다. 교통 문제 전공의 이공계 전문가, 새로운 교통 환경에 직면한 지역 주민의 삶에 정통한 사회과학자, 현장에서 교통과 시민의 삶의 문제를 오랫동안 다루어 온 현장의 전문가, 그리고 해당 지역 관련 시민 등 다양한 주체가 구체적인 접근을 통해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고 크고 작은 해결책들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서양 근대 계몽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의 토대가 된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762년에 출간된 것에 비해, 현실의 구체적 문제 해결 중심의 실학과 교육 기회 균등 및 고급 교육에 국가 장학금 지급을 제창한 유형원의 '반계수록'이 1678년에 출간된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경세치용의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이익의 성호사설은 1760년에 출간되어 프랑스의 1752년 백과사전 출간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서는 비록 서구에 뒤졌지만, 복지국가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는 실학의 전통과 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결코 서양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대구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대구가 보수적이라고 판단한다. 대구 시민 스스로 그렇게 판단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대구는 결코 보수적인 도시가 아니다. 대구는 어느 도시보다 실학적 전통과 태도가 강한 도시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토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머리를 맞대고 갑론을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도시, 대구를 나는 매일 만나고 있다. 물론, 실학적 전통이 세련되게 정착되어 여러 분야에서 시스템적으로 자리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 인간성 등에 대한 동양 학문의 긍정적 유산 위에서 현실의 구체적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의 수준은 서울이 대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근대 학문이 서양에서 이식되면서 인간 본질적 이해에 대한 철학적 인본적 토대의 상실은 한국 근대화의 슬픈 유산이다. 하지만 복지국가, 혹은 시민의 삶의 질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도래로 인해 인간의 존엄에 대한 성리학적 전통 위에 현실의 구체적 문제를 궁구했던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의 실학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공학뿐만 아니라 물리학과 같은 순수 자연과학도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사회의 구체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는 실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장기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인간의 구체적 문제에서 출발하는 실학 하는 태도가 새롭게 요구되고 있다.

난 보수적 도시 대구가 아니라 실학의 전통을 발전시켜가는 도시 대구를 매일 만난다.

윤진효/DGIST IT융합 연구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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