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여, 저 물을 건너지 마오.'
고조선 시대 백수 광부의 처는 레테의 강을 건너려는 임을 붙잡기 위해 간절히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사랑하는 임은 기어이 강물을 건너 영원히 이별했다.
시인 정지용은 어린 아들을 폐렴으로 잃었다. '아아, 늬는 산(山)ㅅ새처럼 날아갔구나!' 아들을 가슴에 묻은 시인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벽녘 유리창에 낀 성에를 보고, 아들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애써 지워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람이 가장 순수해질 때가 언제일까?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의 임종 직전의 순간이 아닐까? 이 순간은 누구나 맞이하는 운명의 시간이기에 항우장사나 범강장달도 피할 수 없다.
식물인간은 인공호흡장치나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지하면 이내 사망할 환자를 일컫는 말이다. 1997년, 환자 가족의 권유에 의해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의료인이 살인방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른바 '보라매 사건'으로 이에 맞서 환자가족이 연명치료 중지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2009년에는 환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경우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사전에 이러한 의사를 반영시킨 유언장이나 녹취록이 없는 대다수의 환자인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최근 약 두 달간 임종을 앞둔 85세의 장모님을 병간호한 적이 있다. 두 차례에 걸친 고관절 수술은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기 위한 최선책이었다. 그러나 고령이라 견디기 어려운 수술의 후유증은 결국 대학병원의 중환자실에서 20일에 걸친 연명치료로 이어졌다.
강심제와 고단위 항생제 투여, 영양과 수분 공급, 혈액 투석과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장치 등 끝 모를 간병과 치료비의 고통이 뒤를 따랐다. 그러는 와중에 2, 3일이 멀다 하고 주변에 계신 분들이 운명했다. 숨이 멎지 않았다 뿐이지 살아있는 분이라고 보기 어려운 환자의 철사처럼 가는 혈관에는 약물을 투여하는 대여섯 개의 링거줄이 매달려 있다. 필자는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편안하게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하는 표정을 장모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지만, 만약 내가 그러한 의사를 표현했다면 의료인이나 친가에 의해서 '사위이기 때문이다'라는 핀잔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인 말기환자를 위한 존엄사 법을 제정하기 위해 심의 중이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 72.3%가 이 법의 제정에 찬성한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기에 누구나 의학적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환자가 될 수 있다. 레테의 강을 건너지 않으려는 임을 굳이 등을 떠다밀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운명에 의해서 강을 건너려는 임을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살아있는 우리들의 임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재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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