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부유세

18세기 영국에는 개인의 부에 따라 세금을 물리는 모자세가 있었다. 세금의 원리는 간단했다. 부자는 값비싼 모자를 여럿 가지고 있고 가난한 사람은 값싼 모자를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세금은 모자 가격에 따라 달랐다. 4실링 이하 모자엔 3펜스, 4~7실링의 모자엔 6펜스, 7~12실링 모자라면 1실링, 12실링 이상의 값비싼 모자엔 2실링의 세금을 매겼다. 부유할수록 세금을 많이 물리는 누진세였던 셈이다. 그때 1실링(당시 1파운드는 20실링)은 오늘날 3.4파운드(원화 6천 원 정도)의 구매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모자를 살 때 납세를 하면 모자 안쪽에 납세필 스탬프를 찍어줬다. 이 스탬프를 위조하는 탈세범들은 무거운 형벌로 다스렸다. 심지어 사형까지도 가능했다. 특이한 방식으로 부자들을 가려냈던 모자세는 1784년부터 27년간 유지됐다.

이에 앞서 유럽에서는 창문세가 유행했다. 이 또한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하는 부유세였다. 이 세금은 창문이 많은 집일수록 부잣집일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사는 집의 창문 수에 따라 차등 과세가 이뤄졌다. 창문이 10개가 안 되면 2실링, 창문이 10~20개 사이라면 4실링, 창문 20개 이상이면 8실링을 물리는 방식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등이 이런 방식으로 세금을 거뒀고 이는 1696년부터 156년 동안 이어졌다.

당시는 소득을 추정할 뚜렷한 방법이 없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 세금은 필수다. 부자들을 객관적으로 가려내기 어렵다 보니 이런저런 고육책이 나왔다.

미국의 한 부동산 재벌이 11일 자신과 같은 부유층에 대해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부유층이 지난 12년 동안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감세안으로 엄청난 혜택을 입었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 정부의 재정 상태가 엉망이 된 만큼 자신 같은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대선을 앞두고 빅3 후보는 핑크빛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겠다고 한다. 하나같이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되는 것들이다. 그 돈은 누가 되건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공약을 실천하려면 부유세 신설이나 증세 등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유감스럽게도 후보들에게서 이런 문제로 고민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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