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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의 시와 함께] 부목살이-홍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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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면 산속 작은 암자에서 군불이나 지피는 부목살이가 꿈이었다 마당에 풀 뽑고 법당 거미줄도 걷어내며 구름처럼 한가하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요즘 나는 신사동 어디쯤에서 돼지꼬리에 매달려 파리 쫓는 일을 하며 지낸다 청소하고 손님 오면 차도 끓여내는데 한 노골이 보더니 굽실거리는 눈매가 제법이라 했다

떫은 맛이 조금 가시기는 했으나 아직 덜 삭았다는 뜻으로 들려 허리를 더 구부리기로 했다 지나온 길 들개처럼 자꾸 돌아보면 작은 공덕이나마 허사가 될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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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를 읽으면 아무 기교 없이 쉽게 쓴 것 같아 잘 읽히는 시가 있습니다. 그런 시는 시간이 지날수록 입안에 은근한 맛이 도는 좋은 차처럼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시 읽기도 마찬가지여서, 이런 시는 오래 읽을수록 뜻이 더 우러나옵니다.

절간에서 군불 때는 부목살이를 꿈꾸는 시인. 그런데 청소하고 차 끓이는 세속의 삶이 부목살이 아니냐 어느 노골이 한수 가르쳤습니다. 굽실거리는 눈매가 들켰으니 아직 길이 멀다는 뜻입니다. 오래 읽으니, 지나온 길을 거두어들이는 시인의 허리가 눈에 훤합니다.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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