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화났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측이 14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 룰 협상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이에 따라 대선 후보등록일(11월 25, 26일)이 열흘가량 앞둔 시점에서, 이번 대선의 큰 변수였던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이 최대의 기로에 서게 됐다.
단일화 협상 중단은 '(단일 후보) 안철수 양보론' 확산에 따른 안 후보 측의 반발 때문이다.
안 후보 측 유민영 대변인은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에서 "(문 후보 측이 주장하는) '안 후보 양보론'은 터무니없다. 문 후보 측에 최대한 빠른 조치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성실한 답을 듣지 못했다"며 "당분간 단일화 협의는 중단된다"고 밝혔다. 양측이 13일 단일화방식협의팀을 구성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지 하루 만에 깨진 것이다.
안 후보 측은 문 후보 측의 '신뢰성'을 가장 먼저 걸고 넘어졌다. 유 대변인은 이날 "문 후보 측 겉의 말과 속의 행동이 다르다. 유불리를 따져 안 후보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 말고 진정으로 정권 교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단일화 협상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문 후보 측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안철수 양보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을 협상 중단의 주요 이유로 든 것이다.
안 캠프 한 핵심관계자는 "허위 사실을 민주당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캠프 사무실에는 '안 후보가 양보한다는데 선거 자금 펀드를 왜 모금하느냐. 사기 아니냐', '안 후보가 양보한다는 말이 맞느냐. 지지자들을 무시하나' 등의 항의성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민주당 측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안 후보까지 나서서 자제를 요구했는데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백원우 전 의원이 안 후보 측 단일화방식협의팀에 한나라당 출신 이태규 미래기획실장이 포함된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낀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것도 문제를 삼았다. 백 전 의원의 트위터에 리트윗된 "안철수 단일화협상팀 이태규? 한나라당 정권을 만들었던 사람, 개혁적 실용정권을 꿈꾸었던 사람 '이태규'"라는 내용이다.
또 문 후보 캠프가 여론조사에 대비해 '유무선 전화를 잘 받아라'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는 제보가 다수 들어온 점을 근거로 "민주당의 조직적 세몰이가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협상 개시 하루 만에 야권 단일화 협상이 중단되면서 '단일화가 정말 깨질 것인가'에 모든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한다. 후보 단일화가 불가피하다는 데에 양측의 인식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일화 방식 협상만 중단됐을 뿐 다른 정책 협의는 계속된다는 점도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다.
안 후보 측도 고민에 빠졌다. 안 후보가 이달 6일 문 후보를 만나 후보등록일까지 단일화를 하겠다는 약속을 한 상태여서, 이를 어길 경우 '합의 번복'이라는 비판은 물론 대선 승리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 측이 단일화 협상을 중단한 데는 최근 지지율이 정체 내지 하락 기미를 보이는 현상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며 "문 후보와의 경쟁에서 여론조사 흐름이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그 흐름을 끊기 위해 마타도어와 조직 동원을 문제삼아 '안철수=피해자', '문재인=가해자' 구도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민주당 한 당직자도 전화 통화에서 "안 후보 측이 밝힌 협상 중단 이유가 썩 와닿지는 않는다"고 했다. 협상 중단은 주요 쟁점에 큰 이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인신 공격이나 언론플레이를 둘러싼 전형적인 신경전의 결과라는 것이다.
문 후보 측은 즉각 진화에 나섰다.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단일화 과정에 큰 상처를 남길 경우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날 부산을 찾았던 문 후보는 단일화 중단 소식을 들은 직후 직접 "오해가 있다면 오해를 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우상호 공보단장도 긴급 브리핑을 통해 "캠프 차원에서 언론플레이를 하거나 안 후보 측을 자극했다는 오해가 없길 바란다"며 "향후 사소한 오해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문 후보 측은 백 전 의원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글을 삭제했고, 정무특보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면서 협상 재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안 후보 달래기에 적극 나서는 것에 대해 당내에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여론 흐름이 자꾸 불리한 쪽으로 흐른다고 해서 갑자기 판을 흔들려는 모습은 그간 안 후보가 쇄신을 주장해왔던 구태 정치가 아닌가"라고 불쾌해 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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