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어머님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나이까
복모구구 무임하성지지로소이다
하서를 받자오니 눈물이 앞을 가려
연분홍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
하염없이 울었나이다
어머님 어머님 기체후 일향만강 하옵니까
피눈물로 먹을 갈어 하소연합니다.
전생에 무슨 죄로 어머님 이별하고
꽃피는 아침이나 새 우는 저녁에
가슴 치며 탄식하나요
험한 세월의 칼바람과 거친 눈보라 앞에서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곁을 떠나 멀리 남양군도로 중국 땅으로 혹은 시베리아로 끌려가야만 했던 식민지하 이 땅의 청년들은 피눈물로 이 '어머님 전 상서'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이른바 조선여자정신대란 이름으로 끌려갔던 처녀들, 지원병이란 이름으로 붙들려간 청년학생들, 징용과 보국대란 이름으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순박하게 살아온 그들이 왜 그런 형벌을 뒤집어써야만 했던 것입니까? 누가 그들의 삶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것인지요?
조명암의 가요시도 절창이지만 김용환의 슬픈 작곡은 이 노래를 듣고 부르는 한국인들의 가슴을 도려내고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을 저절로 쏟게 만들었습니다. 오케레코드사에서 작곡가로 활동할 때의 김용환은 김영파, 김탄포, 조자룡이란 예명을 함께 번갈아가며 사용했습니다.
김용환이 가수로 재주를 듬뿍 뽐내고 있는 작품으로는 '낙화유수 호텔'을 비롯해 '모던 관상쟁이' '술 취한 진서방' '눈깔 먼 노다지' '복덕장사' '장모님전 항의' 등과 같은 만요풍의 노래들입니다.
잘 알려져 있는 바처럼 만요(漫謠)란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런 분위기의 노래를 말합니다. 하지만 표면에 드러나는 웃음 뒤에는 대개 눈물의 현실, 모순과 부조리의 사회를 고발하고 풍자하려는 의도가 감추어져 있지요. '낙화유수 호텔'은 한국의 만요 중에서도 매우 수준 높은 작품에 속합니다.
우리 옆방 음악가 신구잡가 음악가
머리는 상고머리 알록달록 주근깨
으스름 가스불에 바요링을 맞추어
(대사) 자 창부타령 노랫가락 개성난봉가/ 자 뭐든지 없는 거 빼놓곤 다 있습니다/ 에 또 눈물 콧물 막 쏟아지는 '낙화유수' '세 동무'/ 자 십전입니다 단돈 십전 십전
-만요 '낙화유수 호텔' 1절
밤 깊은 길거리에서 카바이트 불빛을 밝혀놓고 노래책을 팔고 있는 길거리 서적상의 광경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바람 찬 거리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1930년대 후반기 식민지 사회의 전형적 풍경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담아낸 노래나 문학작품은 별로 없었지요.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이런 점에서 확인이 됩니다. 이후 김용환은 '가거라 초립동'을 히트시킨 다음, 1949년 불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아까운 청춘을 묻어두고 너무도 일찍 서둘러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천재적 대중음악인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영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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