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남보라

성폭행 소재 영화 '돈 크라이 마미' 출연 배우 남보라

# 교복 맵시 어울리는 제 나이 스물 셋

# 동안 덕분 아직 아역-성인 경계선

"부모님이 출연을 반대하지 못하게 원천봉쇄했죠. 성폭행 소재 영화라고 얘기를 안 했거든요. 아주 간단한 전체 줄거리만 알려 드렸어요. 아직 부모님은 영화를 못 보셨는데 속상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되긴 해요."

배우 남보라(23)는 영화 '돈 크라이 마미'(감독 김용한)에 출연한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못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을 말했고, 또 그 사실을 스크린에서 보여주기 위해 조만간 열릴 시사회에 부모님을 초청했다.

아직 시사회 전이지만 부모님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는 남보라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도 표현이 서툴렀던 부모님이지만 이번 작품은 대견해 하시는 것 같다"고 좋아했다.

22일 개봉하는 '돈 크라이 마미'는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딸 은아(남보라)가 자살하고, 애지중지한 딸을 잃게 된 엄마(유선)가 법을 대신해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자식을 잃은 엄마 역할을 한 유선도 열연했지만, 성폭행을 당한 뒤 고통 속에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여학생으로 나오는 남보라의 연기가 인상 깊다.

◆자살 택하는 역할, 부모님께는 배역 안 알려

남보라는 "극중 은아만의 감정과 이야기가 있어서 좋았다"며 "극중에서 부모님은 이혼을 하지만 엄마와 행복하게 사는 시절도 있고, 안 좋은 사건을 당해 밝고 명랑한 아이가 파괴되는 과정이 표현돼야 하는데 그걸 온전히 해내야 하는 점이 무척 끌렸다"고 회상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고통스럽고 아파하는 여학생 은아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100% 대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실제 경험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 학생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스크린을 통해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남보라의 열연으로 영화는 소녀 은아의 아픔이 그대로 배어난다. 답답함과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촬영하기 전에 '은아의 감정이 뭘까, 내가 은아라면 어땠을까'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어요. '그런 끔찍한 사건이 나에게 실제로 일어나면 어땠을까'라는 고민도 했는데 상상의 끝을 달려가다 보면 너무 끔찍해지더라고요."

힘든 작업이었지만 이제껏, 또 앞으로 배우로 살면서 영화 '써니'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이어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 될 것만 같다고 했다.

"'써니'는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추억 보따리 같아요. 다들 바쁘지만 가끔 시사회에서 만나면 촬영 때 기억이 나죠.(웃음) '해품달'은 처음으로 제 앞에 배우라는 수식어를 붙여줬고, '돈 크라이 마미'는 처음으로 은아라는 캐릭터를 온전히 제가 다 이끌어냈어요. '써니'나 '해품달'에서 아역이나 성인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죠. 제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엄마로 나온 유선의 연기를 보고 또 다른 자극을 받기도 했다. "유선 선배님은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탄탄한 배우잖아요. 감독님이 저한테 원하는 건 한 가지였어요. 엄마가 딸을 잃고 움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를 제대로 해줘야 한다는 거였죠. 영혼이 무너져 가는 것을 표현해야 하는데 유선 선배님이 앞에서 감정 연기를 보여주셨어요. 제 입장에서는 엄청난 자극이 됐죠.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2008년, 13남매 대가족 이야기를 담은 KBS 1TV '인간극장'에서 예쁘장하고 귀여운 어린 학생을 기억한다. 배우의 꿈을 꾸고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던 남보라였다. 관객들이 주목하든 안 하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온 그는 영화 '써니'로 주목을 받더니,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인기가 높아졌다. 이제 꽤 많은 이들이 알아본다. 대학생이 돼 성숙해진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 연기자라는 직업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남보라는 분명 연기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성숙해졌다. '해품달'은 그를 다시 또 성숙하게 만들었다. 성인 민화 공주로 등장한 그는 드라마가 끝날 때쯤 호평을 들었다. 남보라는 '해품달' 이후 연기 잘한다고 칭찬받았을 때 "솔직히 우쭐했었다"고 고백했다.

"주변에서 좋은 소리를 들으니 '내가 연기를 잘하나?'라고 우쭐했던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칭찬을 들으면 '감사합니다' 했는데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대학 입시 때 연기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하던 그 순수한 마음을 잃고 싶지 않더라고요. 칭찬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는 순간이 올 것 같았죠.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추후에 나이를 먹어서도 연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할 거예요."

◆하고 싶은 연기하고 돈까지 벌어 지금 난 행복

남보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극의 화려한 조명에 이끌려 연극부에 들어갔다. 연기를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한국 나이로 24살이 됐다. 동안인 얼굴의 비결을 묻자 "어린 동생들과 살다 보니 그 기운을 받은 것 같다"고 농을 치기도 했지만, 고민은 많다.

"제가 성인 역할을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고, 아역을 하는 건 더 아닌 것 같아요. 성인과 아역의 경계선에 서 있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20대 초반 연기자들이 인생에서 그 부분을 모두 고민하는 것 같아서 힘들지만은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심지어 돈까지 버니 행복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죠. 이 시기가 저에게 약이 되는 것 같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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