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애란의 청춘 발언대] '모디'를 시작하기까지

대구경북 대학생 문화 잡지 '모디'를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겸연쩍게 대답하게 됩니다. "아, 그게, 어쩌다 보니…."

어떤 커다란 목적을 갖고, 혹은 오래전부터 기획한 일이 아니었기에 저의 이 대답은 왠지 궁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사실인 것을.

우리는 인생의 많은 부분이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로 채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인생도 결코 의도하지 않은 우연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와, 참 좋은 선배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인연 역시도 결과를 예상하지 않았던 제 선택들이 불러온 것들이었습니다. 대학 신입생들은 수강 신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첫 학기에는 통상 학교에서 정한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게 됩니다. 재수를 해서인지 저는 대학교에 들어가면 꼭 제가 선택한 수업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먼저 온 고교 동문 친구가 같이 듣자고 한 수업을 따라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예 관심조차 없었을 '여성학'이란 이름의 수업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수업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매주 토론과 에세이를 내야 하고, 수업 중간 중간에도 질문을 할 거예요. 이 수업이 감당이 되지 않을 학생은 지금 당장 나가도 좋아요"라고 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은 저를 소름 돋게 만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수업을 꼭 들어봐야겠다는 다짐이 서더군요. 정작 수업을 소개해 준 친구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듣지 않게 됐지만 저는 과 동기들과의 수업까지 포기하면서 이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그 후에 교수님 말씀이, 일 학년 첫 학기부터 자기 수업을 수강한 제가 내심 신기하고 기특했다고 합니다. 많이 부족했지만, 일 학년 일 학기에 수강했다는 그 특이한 점 때문에 교수님으로부터 좋은 프로그램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그 교수님의 '팬' 혹은 '애제자'라 소문이 날 정도로 수업에 몰두했습니다. 몸으로 직접 배우기를 권장하신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은, 평소엔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제게 '강제'로 세상과 만나게 하는 연습이 됐습니다. 조금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모든 게 남아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모임의 수장이 돼 있었던, '누벨바그'란 독서모임도 저에게는 많은 인연과 변화를 준 선택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재미있고 특이한 친구들을 꼽으라면 그 독서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입니다. '마르크스'며 '영화 비평' '한국현대사' 등등. 저희들의 지적인 한도 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토론했습니다.

요즘의 또래 애들은 쉽게 관심도 가지지 않는 어렵고 두꺼운 책들을 읽으며 결론도 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때는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때 그런 나눔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너무도 외로웠을 것입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지금 '모디'의 발행인으로 있는 선배의 눈에 띄었고, 그 만남이 인연이 되어 선배와 '모디'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은 '모디'를 만드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모디'는 저의 이런 대학 생활의 모습들을 모아 더 크게 만든 장입니다. 이제 수업이 아니라, 제 손으로 보다 많은 세상과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또 독서모임과 다른 개성과 이야기를 가진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공간이 바로 '모디'입니다.

그래서 결국 '모디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가'란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식상한 '운명론'에 귀결되고 맙니다. "아, 그게, 어쩌다 어쩌다 우연처럼 오는, '운명'이었는가 봐요."

그게 '모디'를 시작하게 된 저의 '뻔하지만 진실된' 이유입니다.

대구경북 대학생문화잡지 '모디' 편집장

이번 주부터 4주에 한 번씩 김애란 편집장의 글을 본란에 게재합니다. 요즘 이십대들의 꿈과 고민에 대한 솔직하고도 꾸밈없는 글들로 꾸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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