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부산 곰장어 양념구이

자갈치 아지매들 '매운 인생' 그만큼 맵싸∼한 바다의 맛

맛탐방단 이호성(39) 씨가 부산 곰장어 양념구이가 소주 안주로는 딱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 감칠맛을 음미하고 있다.
맛탐방단 이호성(39) 씨가 부산 곰장어 양념구이가 소주 안주로는 딱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 감칠맛을 음미하고 있다.
부산 곰장어 양념구이의 명소인 자갈치 시장 내 곰장어 골목. 부산을 찾은 사람들이면 누구나 이 골목을 찾아 생동감이 넘쳐 나는 자갈치의 역동적인 풍물을 느끼고 간다.
부산 곰장어 양념구이의 명소인 자갈치 시장 내 곰장어 골목. 부산을 찾은 사람들이면 누구나 이 골목을 찾아 생동감이 넘쳐 나는 자갈치의 역동적인 풍물을 느끼고 간다.

부산을 찾아온 사람이면 꼭 가 보는 곳이 자갈치 시장이다. 거칠디 거친 세파에도 결코 굴함이 없이 오늘의 인간 승리를 연출해 낸 '자갈치 아지매'들이 모여 사는 곳. 살아 퍼덕거리는 생선처럼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삶의 현장이다. 이곳에는 자갈치 아줌마들의 손맛으로 태어난 부산 고유의 향토 음식이 있다. 바로 곰장어 양념구이다. 연중 365일 이 곰장어를 굽고 있는 자갈치 시장 내 노점상 골목에서 끈질긴 삶을 이어 온 자갈치 아줌마들이 오늘도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코를 가진 사람이면 도저히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갈치시장의 산증인 '19번' 할매집

"바쁠낀데 이렇게 다 찾아오시고…."

부산 자갈치 시장 내 곰장어 골목 19번집 박분순(70) 할머니는 '고성거제 할매집' 주인으로 소문나 있다. 친정이 고성이고 거제가 시집이라서 붙여진 별명.

"요 자리서 사십 년을 했심더. 내 금방 해드릴께예." "곰장어는 지 몸에서 진이 나온다 아입니꺼. 건드릴수록 더 많이 나옵니더."

가로세로 2.5m 정도의 좁은 공간에다 사과상자만 한 연탄불 나무탁자 4개를 차려놓은 게 구이집 전부. 즉석에서 산곰장어를 잡아 구이를 해준다. 나무도마에다 송곳으로 미끈거리는 곰장어를 고정한 다음 껍질을 벗겨 내고 칼끝으로 토닥토닥 토막을 치는 손놀림이 현란하다. 이 능숙하고 날렵한 손놀림은 억척스럽게 살아온 박 할머니의 40년 자갈치 인생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먼저 토막 친 곰장어를 쿠킹포일을 깐 쇠불판 위에서 초벌구이를 한다. 썰어둔 풋고추와 양파를 넣고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 다음 한 번 더 불기운을 가한 뒤 포일째로 손님상으로 옮겨낸다. 4인분을 장만해 내는 데 채 1분이 안 걸린다. 초벌구이에도 불판 위의 곰장어는 여전히 꿈틀거릴 정도로 초스피드다.

"양념이 살짝만 눌어붙을 때가 제일 맛이 납니더."

이내 곰장어와 고추장 양념이 어우러져 익어가면서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저절로 군침이 돈다. 불판만 들여다보고 있던 일행은 미리 따라 놓은 소주잔을 연신 들이키고서 잘 익은 곰장어를 골라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그래 이 맛이야!' 매콤하면서도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곰장어 맛도 맛이지만 살짝 익은 양파와 풋고추도 풍미를 더욱 더한다. 고추장 양념에 익은 풋고추는 곰장어에 버금간다. 살짝 익혀진 양파도 곰장어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연출한다. 소주에 이보다 더 궁합이 맞는 안주가 또 있을까. 감칠맛은 소주의 쓴맛을 지워내 달게 만든다.

"술 못 먹는 사람도 안주가 너무 좋다 카면서 소주 한잔씩은 합니더."

자갈치 아줌마들은 민초들이 길이길이 즐길 기막힌 안줏감을 만들어냈다. 말이 필요없는 향토음식의 산업화 성공사례다.

매운맛 때문인가. 목줄기로, 이마로, 귀 뒤로 땀이 흘러내린다. 그렇지만 자갈치 선창가를 스쳐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은 금세 땀을 씻어준다.

"저 큰 배가 없으면 저 멀리 부산 남항동 다리도 잘 보이는데…."

부둣가와 자갈치 시장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박 할머니한테 '누님'이라면서 연신 술잔을 권하던 옆자리 손님이 드디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경북 안동에서 왔다는 그 부부는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흥겹게도 불러댄다. 아마 소주에 취하고 곰장어에 취하고 선창가 분위기에 흠뻑 취한 모양이다. 일행도 손님들도 다들 곰장어에 만족한 듯 얼굴에 희색이 넘친다.

◆자갈치 아지매들의 억척이 이뤄 내

"하이구, 고생한 거는 말도 못합니더."

이곳 자갈치 시장 부둣가 쪽에서 곰장어 구이집을 하면서 형성된 골목은 그동안 굳센 '자갈치 아지매'들이 쟁취한 고단한 삶의 최종 정착지. 곰장어 구이집만 100여 곳, 좌판 생선 노점상과 합하면 200여 곳이 넘는다. 자갈치 아지매들이 처음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부둣가에 드나드는 외지 손님들을 상대로 생선 행상을 하면서부터다. 다들 전쟁통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하는 기막힌 여인들. 고무 함지박에다 생선을 이고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팔아야 하는 '억척스런 삶'이 시작된 곳이다.

박 할머니는 40년 전 서른한 살에 여덟 살짜리 딸 하나에 다섯 살, 세 살배기 아들 둘을 두고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결혼 7년 만에 과부가 돼 자갈치로 나오게 됐다.

"처음에는 애들하고 굶어 죽을까 봐 겁도 많이 났지요."

당시는 자갈치 아줌마들이 무허가로 장사한다고 시장 사람들의 구박이 심했다고 한다. 부두 노무자들에게 함지박을 빼앗기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렇지만 장사를 못하면 굶어 죽는 수밖에 없어 단속에 걸려 함지박을 뺏기고 걷어채도 이튿날이면 다시 새벽부터 장사를 나오곤 했단다. 박 할머니는 셋방살이에 애들만 집에 남겨뒀으니 장사를 하면서도 맘이 바빠 고생스럽다고 생각할 틈이 없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생선 행상 아지매들 중 한 명이 부둣가 한쪽에 평상을 차려놓고 곰장어 양념구이 장사를 시작하면서 떠돌아다니던 아줌마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수백 명으로 늘어나자 부산항만청에서 못 들어오게 철조망을 치면서 그 주변으로 옮겨가 일렬로 다닥다닥 자리를 잡으면서 특별한 곰장어 골목을 형성하게 됐다고 한다.

"요새는 오징어배가 많이 들어와요. 옛날에는 진주, 여수, 하동서 밀감, 양파, 쌀 실은 배가 많이 들어왔지요."

부산에 농산물을 팔러오는 뱃사람들과 관광객들이 주 고객이었다고 한다. 이제 할머니가 돼 버린 '자갈치 아지매'들. 전부 박 할머니처럼 비슷비슷한 사정을 안고 산다.

"어시장에서 너무 일을 열심히 하다가 과로로 쓰러졌지요. 남편을 살릴끼라고 부산시내 병원이란 데는 안 가본 데가 없는데. 고마 열흘 만에 가버렸지요."

웃고 있지만 박 할머니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요새 의술 같으면 남편을 살렸을 거라고 옛일을 안타까워하던 할머니는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본의 아니게 닥친 지난 어려웠던 시절의 고난을 온몸으로 버텨낸 자갈치 아지매들의 애환이 매운 고추장 양념에 오버랩되는 것 같다.

◆당당하게 부산 음식이 된 곰장어

'자갈치 아지매'들은 곰장어를 애써 '꼼장어'라고 부른다. 손님들에게 더 고소해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른단다. 부산 인근 기장 앞바다에서 통발로 잡는 곰장어는 조건만 맞으면 먹이를 먹지 않고도 2개월 이상 견디는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곰장어는 고기보다 껍질에 가치가 더 있다. 질기면서도 부드러워 가죽제품으로 인기가 있다. 그래서 곰장어 구이집은 고기는 양념구이를 해서 팔고 껍질은 껍질대로 팔아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다.

"원래 이곳에는 곰장어 가죽공장이 있었지요. 곰장어 가죽을 벗겨서 모자챙 테도 만들고 나무슬리퍼 끈도 만들고 했지요."

그 옛날 이 공장에서 나온 곰장어 고기가 지금의 양념구이 재료가 된 시초다. 자갈치 아지매들이 기막히게 만들어 낸 것이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억센 소갈비를 이용해 만든 포천 이동 양념갈비나 동두천 부대찌개와 엇비슷한 애환을 가진 향토음식 스토리다.

박 할머니의 곰장어 양념구이집도 이제 대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큰아들이 최근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자갈치 시장 내에 부산 곰장어 전문식당을 차렸다.

"장사가 너무 엉성시럽어서 아들한테 그리 몬하게 말렸는데."

큰아들이 양념 좀 가르쳐 달라고 해서 늦게 알아차렸지만 이미 말리지 못할 정도로 가게를 준비해 놔서 하는 수 없이 양념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단다.

"장사는 손님들에게 잘해야 됩니더. 정성을 다해야지요."

박 할머니는 가게를 파하고 집으로 들어가다가도 단골손님이 찾으면 돌아온다. 불을 껐다가도 다시 붙인다. 그래서 서울, 인천, 대구, 대전 등 전국에 단골손님이 깔려 있다. 택배를 해달라고 하면 밤중이라도 장만해서 부쳐 줄 정도다. 1인분에 1만원.

"가스불은 양념이 타버리지요. 끄면 바로 식어버리고. 그래서 곰장어 굽는 데는 은은한 연탄불이 최고지예."

석쇠로 구워도 신통찮다고 한다. 직화엔 양념이 타버려서 제맛을 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연탄불이다. 연탄불밖에 없던 그 시절 연탄불에 걸맞은 곰장어를 재료로 연탄불에 맞는 철판을 만들고 양념구이를 개발해낸 자갈치 아지매들의 슬기가 보인다.

연탄불을 가운데 두고 다닥다닥 붙어 앉지 앉으면 안 될 정도로 작은 나무탁자도 정겹다. 부두의 뱃고동 소리도, 배 엔진 소리도, 부둣가의 비린내도 곰장어 안주에 소주 한잔을 걸친 사람들을 그저 들뜨게 만든다. 모두 다 향토음식 산업화의 중요한 소품들이다.

"기자 양반. 누님 장사 못 하게 했으니 다 물어 주고 가야 돼요."

곰장어 안주와 소주에 취해 부둣가 마도로스 기분이 듬뿍 든 옆자리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농담을 던진다. 그는 할머니에게 다음에도 꼭 오겠다는 말을 여러 번씩이나 하고 떠났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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