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되살아나는 대구 북성로… 젊은이도 팔걷은 근대사 1번지 시간여행

일제강점기 건축물 리모델링, 숨은 스토리 찾아 혼 불어넣어

대구 북성로가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북성로의 일제강점기 시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을 배경으로 건축가 홍석진
대구 북성로가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북성로의 일제강점기 시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을 배경으로 건축가 홍석진'최영준 씨 문화기획가 배두호 씨. 건축가 차상훈 씨(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이 건물은 일본에 의해 지어졌지만 원래는 우리 조상들이 만드셨죠. 지금 대부분 사라지고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입니다."

대구 북성로 삼덕상회 옆 '태영철망' 건물은 요즘 한창 공사 중이다. 건축설계사무소 아키텍톤 최영준 대표가 오래된 건물을 뜯어내고 사무실로 리모델링하는 것. 하지만 최 대표의 리모델링은 여느 건물의 그것과는 다르다. 최 대표는 '디자인이 없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일본인이 지은 이 건물은 거대한 간판과 시멘트 외피로 감싸져 본래의 건물은 숨겨져 있어요. 원래 건물에서 현재 모양으로 증축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본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썩은 목재와 비 새는 기와를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통 한옥을 하는 도편수,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을 모셔 '제대로' 과거 건물을 되살리고 있다.

천장을 뜯어내 일본 건물의 수직적 아름다움을 살렸다. 그 사이 한국적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서까래가 들어간다. 과거의 기술은 80년의 세월을 너머 오늘날의 그것과 만나고 있다.

건축가 최 씨는 어린 시절 20년 이상 옻골마을 한옥에서 살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한옥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계명대를 졸업하고 네덜란드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그는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게 가장 아름답다'는 개념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최 대표처럼 뜻 있는 젊은이들이 하나둘 대구로 모여들고 있다. 자발적으로 근대적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북성로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

지난해 4월 문을 연 '스페이스 우리'는 자생적인 대안 문화공간 개념이다. 6개의 방이 있는 이곳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와 공간을 공유하고, 협업을 하기도 한다. 인디밴드 연습실, 도서관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곳을 거치며 집약되는 에너지를 느낀다. 손님이 워낙 많아 게스트하우스를 따로 만들어 뒀을 정도.

"공간보다는 이렇게 사람들이 드나듦으로서 생기는 네트워크가 중요해요. 외국 작가들도 오가면서 작업을 해요. 예술 파티도 많이 열립니다." '스페이스 우리' 배두호 디렉터는 "북성로의 기술 생태계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고 했다.

대구사회연구소 산하 협동경제사업단 청년사회적기업가육성센터도 낙원식당 건물을 리모델링해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전충훈 사무국장은 "북성로가 가진 역사성에 주목해 이곳에서 사무실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공구골목도 기술자들이 많았던 공간인 만큼 북성로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도시 재생이 따라올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중으로 리모델링을 마치고 내년 초 입주하게 된다.

지난해 일제강점기 시대의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삼덕상회가 문을 연 이후 많은 사람들은 북성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관'의 지원없이 시민들의 힘으로 이 작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 북성로는 '전국 최고의 공구골목'이라는 이름에다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골목으로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근대건축물의 원형, 그리고 북성로의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이 모여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북성로의 묵은 때를 벗겨 내고, 그 속에 숨어있던 스토리를 끄집어내는 것은 (사)시간과공간연구소. 권상구 이사는 앞장서서 북성로의 기술 생태계를 복원하고, 북성로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12월 말, 근대건축물을 리노베이션한 '북성로공구박물관'도 들어설 예정이다. 지자체와 민간, 북성로상가번영회가 협력해서 진행하고 있는 북성로공구박물관에는 벌써 삼덕상회 건물주가 소품 300여 점을 지난해 기증했다. 중구청과 북성로상가번영회는 공구를 기증받고 있는 중이다.

이로써 대구의 중심인 중구는 '미래'라는 새로운 시간의 켜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1906년 여름, 조정의 허락도 없이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허물던 장면, 미나카이 백화점으로 상징되는 대구 최고의 상권, 국내 공구 유통시장의 메카 위에 새로운 미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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