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야문화의 세계화] ③鐵의 왕국

한반도 '철의 시대' 선구…백제 신라와도 어깨를 견주다

고령 대가야왕릉전시관에는 가야 철기방을 재현해 놓았다.
고령 대가야왕릉전시관에는 가야 철기방을 재현해 놓았다.
가야시대 철투구
가야시대 철투구
가야시대 쇠창과 쇠창고달이
가야시대 쇠창과 쇠창고달이
가야시대 철 갑옷
가야시대 철 갑옷

인류 문명의 가속화를 이끈 것은 철의 발견이다. 돌보다 단단하고 청동보다 강한 철의 사용은 인류 문명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켰다. 철을 처음 사용한 것은 기원전 3천500~1천 년쯤으로 추정된다. 고대 이집트, 터키, 이라크, 시리아, 중국 등의 유적에서 자연철인 운철인류문명(隕鐵)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철을 다루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관련 수공업이 활발해짐에 따라 철광석을 녹여 제련할 정도의 기술이 축적됐다. 오늘날 포스코가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로 발전할 수 있었던 초석이 된 셈이다.

◆가야국가의 형성과 철

기원 전후 한반도 남부에는 여러 개의 작은 나라로 구성된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다. 지금 고령에 위치한 변한에 속한 반로국은 차츰 힘을 키워 4세기가 되면서 가락국이 됐고, 5세기 이후 대가야국으로 성장했다. 대가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진출을 계기로 두각을 나타냈다.

전기 가야의 중심인 금관가야가 심한 타격을 입고 신라에 흡수됐지만, 대가야는 일찍부터 힘을 키워 후기 가야의 주도권을 잡으며 발전했다. 479년 하지왕은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이 중국에 사신을 파견해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이란 작호를 받고 스스로 대왕이라 칭하며 여러 가야를 이끌었다. 이 같은 기반으로 5세기 후반에는 고령뿐만 아니라 합천, 거창, 함양, 남원, 장수, 순천까지 세력을 넓혀 백제'신라와 대등한 단계로 발전했다. 이처럼 대가야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철 생산을 통한 경제적 군사적 성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철기문화는 기원전 3, 4세기쯤 중국 연(燕)나라를 통해 북부지역에 처음 보급됐다. 기원전 2세기 말쯤 중국 한(漢)나라의 단조철기문화가 도입되면서 철기 사용은 보편화됐고, 무기와 농기구가 모두 철제품으로 바뀌었다.

가야지역의 철에 대해 '삼국지' 위지 동이전 변진조에는 "나라에 철이 생산되는데 한(漢), 예(濊), 왜(倭)가 모두 와서 가져갔다. 여러 시장에서 모든 매매에 철을 사용했는데 마치 중국의 돈과 같이 사용됐다. 또 이군(낙랑군과 대방군)에도 공급되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은 변'진한지역(동남지역)의 철 생산 실태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자료이다. 3세기부터 변'진한 지역의 철기들이 다른 곳으로 공급됐고, 4세기 이후 철기 보급이 확산되면서 각 지역에서 자체적인 철 생산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대가야와 관련된 철 생산 유적은 고령 인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발굴 조사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통해 합천군 야로면 야로 2리, 가야면 성기리 야동마을, 고령군 쌍림면 용리 일대에서 야철의 흔적이 발견됐다. 대가야에서 철기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채광, 제련 등의 기술적인 축적과 함께 질 좋은 철광산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조선 전기 야로에서 철이 많이 생산돼 중앙정부에 연간 세공으로 정철 9천500근을 바쳤다'고 기록돼 있는 점으로 비춰봐 야로에서 많은 양의 철이 생산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철은 대가야의 성장 원동력

철은 고대사회의 경제유통에서 화폐를 대신할 만큼 가치가 있었다. 이 때문에 철의 생산과 유통은 국가가 장악했다. 당시 철 생산은 아주 어렵고 특수한 기술이 필요했다. 철 생산에는 원료가 되는 철광석이나 사철 확보뿐만 아니라 이를 녹이는 데 필요한 많은 양의 질 좋은 목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광석을 녹여 철을 분리해 내는 제련기술이었다. 이 과정에서 생산한 철을 도구나 무기를 만들기 쉽게 일정한 형태의 납작한 철정으로 만들어 굴비 엮듯이 끈으로 엮어 유통시켰다. '덩이쇠'로 불리는 철정은 화폐로 사용됐고, 외국에 수출하거나 무기와 농기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다. 이 같은 철정은 신라와 백제지역의 무덤에서도 출토됐지만 가야지역의 고분에서 특히 많이 출토됐다. 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철기유물 가운데 갑옷, 투구, 큰칼, 쇠창, 쇠도끼, 화살촉 등 무기와 등자, 안장, 기 꽂이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3세기 이후 가야지역은 단조기술이 발달해 유기질제의 갑옷과 투구가 철제로 바꿔졌고, 생산력 증대로 사회구조가 재편성되면서 갑옷과 투구의 수요가 늘어났다. 5세기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이 전쟁에 휩싸이면서 갑옷과 투구는 급속도로 확산돼 각지의 가야 고분에 묻히게 됐다. 갑옷은 미늘갑옷과 판갑옷으로 나누어지며, 부속구로 목가리개, 팔뚝가리개, 말 투구, 말 갑옷 등이 있다. 미늘갑옷은 소형의 철판을 수백 개 연결한 것으로 미늘의 대량 생산과 가죽 근으로 철판을 하나하나 연결하기 위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판갑옷은 말투구와 함께 입체적인 구조물로 제작의 기획성과 고도의 기술이 없으면 만들 수 없었다. 갑옷의 판을 일일이 못을 사용해 연결한 점은 철기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짐작게 한다.

대가야는 철 생산과 철기 보편화를 통해 각종 농기구를 만들어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켰고, 무기 제작을 통해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했다. 또 덩이쇠를 만들어 중국과 왜, 삼국과의 교역을 통해 국가의 부를 창출했다. 이처럼 대가야 성장의 발판이 된 것은 철(鐵)이다. 대가야는 철의 왕국이었다.

◆고대 제철의 생산 과정과 제철 유적지

고대 사회의 철 생산은 고도의 기술적 수준이 요구됐다. 철광석을 제련하기 위해 원료(철광석과 사철) 확보가 쉽고, 이를 녹이는 데 필요한 많은 연료 공급이 원활해야 했다. 제련소의 입지 조건은 연료 확보가 쉬운 곳이 우선됐고, 생산과 유통이 원활하고 일사불란하게 운영과정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했다. 철 생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양질의 철광석 확보이다. 철광석은 사철(砂鐵)과 자철광(磁鐵鑛)이 원료로 가장 많이 쓰인다. 목탄 생산을 위해 벌목과 운반은 물론 목탄요를 축조할 수 있는 전문적인 생산체계가 필요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철 생산 작업에 필요한 전문 기술자를 비롯한 많은 인력 확보였다. 철광석과 목탄이 확보되면 제련로(製鍊爐)를 축조하는데, 고온에 견딜 수 있도록 점토에 모래와 짚 등을 섞어 만들었다. 고대 제철로는 대부분 점토를 이용해 축조했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돌과 점토를 함께 사용했다.

고대 제철로는 원형이 많지만 장방형이나 방형의 경우도 가끔 있다. 제련로에서 생산된 괴련철이나 부분적으로 선철이 함유된 괴련철을 다시 정련하는 정련로(精鍊爐)가 있다. 정련로에서 만들어진 선철을 녹여 주조 작업을 하는 용해로(鎔解爐)와 정련 과정에서 제강된 소재를 이용한 단조작업의 단야로(鍛冶爐)가 있다. 이 모든 과정에는 반드시 인위적인 가풍 장치가 필요하며, 풀무와 송풍관을 사용했다.

고령을 중심으로 대가야 지역의 제철로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조사는 2004년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야로면 야로리 돈평마을 유적에 대한 시굴조사가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발굴 조사 자료가 많지 않고 제철 유적을 대상으로 한 정밀 지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고령 지역의 제철 유적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각종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 가능한 제철 유적은 모두 안림천 유역에 분포돼 있다. 고령군 쌍림면 용리 제철유적지는 미숭산(해발 734m) 남쪽 사면에 형성된 골짜기에 있다. 쌍림면 용1리의 해발 270m 정도 되는 골짜기로 속칭 시부리터(쇠부리터)와 북쪽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져 마주 보이는 속칭 무시골(무쇠골)에서 2개소의 제철 유적이 확인됐다.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제철 유적지는 합천 야로면과 묘산면을 거쳐 내려오는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의 만대산(해발 688m) 골짜기에 있다.

합천군 야로면 야로리 제철 유적지는 쌍림면의 용리 제철 유적과 미숭산 줄기의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당시 고갯길을 이용해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로리 제철 유적은 2004년 경남고고학연구소에서 시굴 조사해 4기의 제철 흔적을 확인했다. 이 가운데 원형로를 갖춘 전방 후원형의 제련 시설이 확인된 점은 고대 전통 제련로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고령'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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