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을 알자] 대동맥류

얇아진 혈관 풍선처럼 부풀어 어느 순간 '뻥'

대동맥은 인체에서 가장 큰 혈관이다. 성인의 경우, 대동맥 지름은 약 3cm 정도. 많은 혈류량과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심장의 좌심실과 직접 연결돼 있으며,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 온몸으로 공급되는 주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대동맥류'는 대동맥의 혈관벽이 여러 이유로 약해져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그대로 방치하면 혈관이 점차 부풀어 올라 결국 터지고, 순식간에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되는 무서운 병으로 알려져 있다.

◆사전 증상이 거의 없는 대동맥류

이처럼 치명적인 질환이지만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증상은 거의 없다. 건강검진에서 흉부 X-선 사진을 찍다가 심장 한쪽이 부풀어 오른 것을 확인해서 다시 정밀검사를 받아야 확진이 가능하다.

대한흉부외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동맥류 수술은 2000년 381건에서 2001년 501건으로 늘었고, 2011년엔 1천37건을 기록했다. 생활 환경의 변화와 함께 고령인구가 늘어난데다 수술기법이 향상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동맥류는 부풀어 오른 혈관의 지름이 5cm를 넘어선 경우, 수술을 통해 늘어난 대동맥류를 제거하고 인공혈관으로 갈아넣는 것이 지금까지 확립된 치료방법이다.

하지만 수술을 위해서 인공심폐기를 사용해야 하고, 체온을 20℃까지 떨어뜨린 뒤 온몸의 혈액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는 완전 순환정지 등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기법이 필요하다.

때문에 수술 시간이 길고 합병증과 후유증의 발생 위험도 높아서 수술사망률도 꽤나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들어서 '하이브리드'(Hybrid)라는 용어를 흔히 볼 수 있다. 의료의 경우, 말 그대로 여러 치료기술을 복합적으로 적용하는 치료법이다. 병이 생긴 부위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치료하는 '외과적 수술법'과 영상장비를 이용한 '내과적 시술법'을 융합한 것으로, 수술 상처는 최소화하면서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최신 기법을 '하이브리드 술식'이라고 한다.

◆위험 줄이고 회복 기간 빨라져

최순임(65'여'가명) 씨는 가슴에 통증이 심해 응급실을 찾아왔다. CT 검사에서 상행대동맥, 궁부대동맥, 하행흉부대동맥이 모두 약 7cm 이상 늘어나 있는 대동맥류(그림 1)로 진단됐다. 혈관이 터지기 직전 상태였다.

대동맥은 위치에 따라 심장에서 머리 쪽으로 올라가는 상행대동맥, 활처럼 휘어진 궁부대동맥,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하행흉부대동맥, 복강내로 이어지는 복부대동맥으로 나뉜다. 게다가 심장초음파 검사에선 대동맥판막의 역류증(심장에서 대동맥으로 이어지는 판막에 이상이 생겨 피가 심장 쪽으로 거꾸로 흐르는 것)이 동반돼 있었다.

예전 같으면 두 차례로 나눠 가슴 한가운데와 옆구리를 각각 절개하는 두 번의 대수술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수술 위험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돼 내과적 시술로 해결할 수 없는 부위만 수술로 치료하고 남은 부위는 부분마취를 한 뒤 영상장비를 이용해 '스텐트 그라프트'(금속 그물망을 씌운 인공혈관)를 삽입하는 하이브리드 치료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1단계 치료는 전통적인 수술법으로 대동맥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한 후 상행대동맥과 궁부대동맥 전체를 인공혈관으로 갈아 넣고 2차 시술을 위한 준비과정으로 인공혈관의 여유분을 하행흉부대동맥에 남겨두는 수술을 했다.(그림 2)

2단계 치료로 내과적 시술을 통해 하행흉부대동맥에 스텐트 그라프트를 삽입해 대동맥류를 완전히 치료했다.(그림 3). 기존 수술법으로는 옆구리를 따라 약 50cm 정도 절개하는 수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타구니에 있는 대퇴동맥을 통해 도관(카테터)를 대동맥까지 집어넣은 뒤 스텐트를 삽입했다. 시술 시간은 90분 정도이며, 회복 기간도 훨씬 빨랐다.

◆고령 및 응급환자에게 우선 시행

조찬영(66'가명) 씨는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복부대동맥과 궁부대동맥에서 대동맥류가 발견됐다. 일단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받은 뒤 흉부외과로 옮겨왔다. CT 검사를 한 결과, 궁부대동맥과 하행흉부대동맥에 걸쳐 6cm가 조금 넘는 크기의 대동맥류가 발견됐다. 관상동맥조영술(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을 보여주는 영상기법) 검사에서 오른쪽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혀있는 관상동맥질환(협심증)이 함께 발견됐다.

조찬영 씨의 경우, 내과적 시술만으로 대동맥류를 치료하기에는 위치가 좋지 않았다. 시술 중에 궁부대동맥에서 왼쪽 머리로 올라가는 동맥(총경동맥)을 막아 뇌졸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관상동맥질환에 대한 별도 치료도 필요했다.

결국 하이브리드 술식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1차 수술은 가슴 정중앙을 절개한 뒤 다리에 있는 복제정맥을 떼어와 관상동맥 우회술(신체내 다른 부위의 혈관을 떼어와 막힌 관상동맥을 대체하는 수술)을 먼저 시행했다.

그런 뒤 머리로 가는 동맥을 원래 있던 궁부대동맥에서 상행대동맥 쪽으로 옮겨 연결했다. 이를 통해 궁부대동맥류에 대한 내과적 시술(부풀어 오른 혈관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텐트 그라프트를 삽입하는 것)을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을 미리 예방하도록 했다. 2차 시술은 역시 대퇴동맥 위에 2cm만 절개하고 안전하게 스텐트를 삽입했다.

하이브리드 치료법은 비교적 간단하게 수술을 하는 동시에 스텐트 그라프트를 삽입하거나, 1차 수술 후 안정된 뒤 통상적 수술법 대신에 사타구니 대퇴동맥을 통해 스텐트 그라프트를 삽입하는 치료법을 혼합한 것이다. 전통적 치료법에 비해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고 ▷회복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동일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치료법이다.

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박남희 교수는 "아직은 스텐트 그라프의 10년 이상 장기성적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라 젊은 환자에서 시술하기에는 다소 부담이 있다"며 "고령이나 수술 합병증이 우려되는 환자나 응급상황, 재수술 등 위험 부담이 큰 환자에서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전문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도움말 = 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박남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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