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원로 성악가와 배우의 기념공연

지난달과 이달에 대구문화예술계에 뜻깊은 공연이 이어졌다. 팔순을 맞은 성악가와 칠순을 맞은 배우의 기념공연. 두 공연 모두 지역문화예술계를 위해 오랜 시간 헌신해 온 공로를 기념해 후배들이 뜻을 모아 연 훈훈한 공연이었다.

두 원로 성악가와 배우의 입장에서는 후배들이 마련한 이 자리가 고마우나, 객석에서 바라볼 시선이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그 모든 부담을 일소하기 위해 당신은 또 얼마나 노력하였을까?

그 노력을 입증하듯 남세진(80) 성악가는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깨끗한 소리를 내며, 젊은 후배들조차 감히 따라하지 못할 무반주로 노래를 시작하는 '절대음감'을 선보였다. 서영우(70) 배우는 칠순의 나이에도 후배들과 함께 매일 연습하면서 당신이 알고 있는 연기의 세계를 그들에게 보여줬다. 그날의 공연을 보거나 함께 참여한 후배들이라면 많은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배는 앞서가는 선배의 등을 보며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마치 아들이 아버지의 커다란 등을 보며 성장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지 않은 분야가 없겠지만 특히 문화예술계는 선배의 발자국이 유독 선명하다. 그것은 문화라는 말이 무색하고 예술이라는 단어가 일상과 괴리를 이루던, 빈곤에서의 탈출이 국가의 대명제가 되던 시절에 예술가가 걸었던 고된 길 때문일 것이다. 소위 '딴따라'라는 몰이해의 비아냥을 이겨내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어떤 사명감이었을까?

경제적 궁핍함과 사회적 냉대 속에서도 장르의 구분 없이 지금의 시절보다 더 치열했으며 서로 간의 장르를 더 이해하고 교류도 더 활발했다.

누군가가 앞서 걸었기에 길이 만들어졌듯 후배는 선배의 족적을 좇으며 나아간다. 처음의 앞선 발자국은 힘겹지만 힘차고 선명하다. 그 선명한 족적을 따라 후배 역시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앞선 족적이 희미해지고 뒤돌아보는 발자국과 여러 갈래 길로 갈라져 버린 족적에 후배는 당황한다.

어느덧 후배는 중견이 되어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라는 갈림길에 서서 선배들이 그러했듯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라고 자문해보면서, 뒤따라오는 후배들을 발견하게 된다. '저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서야 앞서 걷던 발자국 중에 더 크고 더 힘차고 더 선명한 발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원로가 중견의 후배에게 남긴 족적이다.

예술가가 되기는 쉽다. 그러나 후배들에게 등을 내보이고 족적을 따르게 할 원로 예술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유혹의 갈림길에서조차 올곧게 외길을 선택하고 걸어오신 모든 원로 예술가에게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김은환<'굿 프랜즈 아츠 그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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