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 담장 쌓는 사회] <하> 범죄가 두려운 아파트

동네 이웃과의 소통보다 '보안'

대구시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 당시 담장이 없었으나 도난과 경관 훼손 등 부작용이 빈발하자 최근 담장이 설치됐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시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주 당시 담장이 없었으나 도난과 경관 훼손 등 부작용이 빈발하자 최근 담장이 설치됐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이달 14일 오전 2시쯤 대구 수성구 범어동의 A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남성 2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여러 차례 주차된 차량들의 문을 밀고 당겨 잠겨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 날 한 주민이 주차해둔 차량 안에는 누군가가 차량을 뒤진 흔적이 있었다. 다행히 도난당한 물건은 없었지만 누군가가 아파트로 쉽게 드나든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외부인의 흔적이 A아파트에 남겨진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A아파트는 2008년 입주 당시부터 담장을 쌓지 않았다. 담장을 세울 공간에 잔디밭을 꾸미고 산책길을 만들었다. 벤치를 둬 주민 휴식 공간으로 단장했다. 높은 담장을 쌓아 이웃 주민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아파트의 답답한 이미지를 벗어나 이웃과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A아파트는 올 9월 4천만원을 들여 아파트를 둘러싼 화단에 1.2m 높이의 담장을 쌓기로 결정했다. 외부인들의 침입으로 아파트가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채용식(72) 씨는 "밤중에 막무가내로 아파트에 들어와 나무에 구토를 하거나 노상방뇨를 하는 일이 잦다"며 "담장 허물기 취지와 효과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시민의식은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아파트 화단에는 쓰레기들이 뒹굴고 있었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 만들어진 샛길이 잔디밭에 여러 갈래로 만들어져 있었다. 부러진 가로등이 있는가 하면 벤치에는 온갖 욕설이 씌어 있었다. 주민들은 결국 마음의 문을 닫고 이웃과 담을 쌓기로 한 것이다.

아파트들이 '그들만의 성벽'을 다시 쌓고 있다.

대구시가 1996년 관공서를 중심으로 시작했던 담장허물기사업은 1998년 대구 YMCA의 마을만들기운동으로 탄력을 받아 아파트, 학교, 주택으로까지 퍼졌다. 지난달까지 대구시가 허문 담장은 700곳(2만7천453m)에 달한다. 이 중 담장허물기를 통해 담을 허문 아파트는 7곳이다.

하지만 최근 외부인 출입으로 골머리를 앓자 다시 담장을 쌓거나 담장 높이를 올리는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다.

A아파트 인근에 위치한 B아파트는 지난달 담장을 쌓았다. 2010년 담장 없이 설립된 이 아파트는 올 9월 입주자 회의를 거쳐 담장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주민 이경희(40'여) 씨는 "담장이 없을 때 사람들이 잔디를 함부로 밟았고 주변에 나뒹구는 쓰레기가 많아 불편했다"고 했다.

B아파트 관리소장은 "아파트에는 담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담장이 없으면 외부인들이 들어와 폐기물을 버리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싸우는 등 아파트가 우범지대로 변하고 만다"고 주장했다.

대구 수성구 수성동에 위치한 C아파트는 지난해 1.4m 높이의 담장을 2m로 높이고, 45m의 담장을 추가로 설치했다. 이곳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외부인이 들어와서 놀이기구나 운동기구를 파손하는 등 아파트 주변을 어지럽혀 보안을 위해 높이를 더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영남대 백승대(사회학과) 교수는 "담장허물기사업은 벽으로 단절됐던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바꾸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사업으로 대구의 대표 자랑거리 중 하나다"며 "담장허물기사업을 대구시민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 스스로 성숙된 시민의식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구시 황종길 자치행정과장은 "담장을 허문 자리에 생겨나는 문제점들은 CCTV를 설치하는 방법으로 보완을 하고 있지만 단속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며 "담장허물기사업은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동참할 때 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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