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우리가 어떤 이야기 속에 떨어진 거지?"
"나도 궁금해. 그런데 진짜 이야기들은 다 그렇잖아. 네가 좋아하는 이야기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만 생각해 봐. 그 이야기가 어떤 종류의 이야기인지, 결말이 행복할지 슬플지 우리는 예측할 수 있지만, 정작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결말을 모르잖아." (영화 '반지의 제왕' 프로도와 샘의 대화 중에서)
최근 제법 많은 이야기 관련 책을 더듬었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본질은 저만치에서 나를 비웃고 있다. 이야기 바깥에 있는 사람은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결말을 모른다. 혹시 내가 살아가는 걸음걸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만 모르고 모두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속에 내가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이따금 두렵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분명 재미있다. 저물어가는 서녘 하늘이 길게 산 그림자를 만든다. 이제는 저물어가는 풍경들이 아름답다. 이렇게 언어를 만들어 가는데 그 다음 문장이 다른 문장에 걸려 나아가지 않는다. '디베이트, 책쓰기, 통합논술, 구술면접, 그림책, 연수, 감사, 보고, 예산, 행사….' 현재의 나를 지배하는 언어들이 좀처럼 틈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바쁜 속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무척 행복했다. 새로운 이야기의 열쇠는 대체로 책 속에 있었고, 이미지와 사유가 스며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언어들에 전율하면서 책에 담긴 마음을 따라가면 새로운 길이 거기에 있었다.
학생이 주도하는 행복과 인성교육 프로젝트, 토크 콘서트 '친구'가 끝났다. 행복했다. 지난 7월 21일, '우리 시대의 가족을 말하다'를 주제로 한 '가족사랑 디베이트 어울마당'이 끝난 후, 많은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다음 프로그램이 뭐냐고. 하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보다는 그 계획을 실천할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계속된 연수 진행과 통상적인 업무, 그리고 예산 편성에 대한 압박, 국정감사 등이 기다리는 9월이 두려웠다. 일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 편은 아닌데 매일 두통에 시달렸다.
지난 6월, 인성교육 자료 개발을 위해 급작스럽게 인성교육지원팀을 꾸렸다. 자료 개발과 정리를 하면서 비로소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BS지식채널에서 보았던 한 아이의 절규. "내 마음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합니다."
무한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진실하게 친구의 손을 잡아보는 따뜻한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어떤 방식이 좋을까? 무엇이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최근 유행하는 토크 콘서트를 떠올렸다. 단순한 토크 콘서트만이 아니라 공연을 곁들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모든 진행을 아이들에게 맡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거기까지가 내 몫이었다.
인성교육지원팀과 지속적으로 워크숍을 가졌다. 제시된 의견들을 검토하면서 프로그램을 구체화했다. 계획서를 만들고, 학교로 참가팀 선정 공문이 나갔다. 전체적인 흐름은 정했지만 흐름 그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은 여전히 부족했다. 특히 대부분의 진행과정을 학생들에게 맡겼기 때문에 불안함도 자라났다. 하지만 그런 불안함 때문에 처음의 계획을 수정할 생각은 없었다. 10개의 공연팀이 선정되고 MC(행사진행, 토크진행), 봉사활동 참가자, 축하공연팀 등이 차례로 확정되었다.
9월 21일 학생들까지 참가한 전체 워크숍이 열렸다. 참가대상 학생들은 물론 지도교사조차 행사가 지닌 철학이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런 형태의 행사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내 마음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답답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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