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단일기] 교단에서 읽는 새로운 '이해'

고은영 화원중 교사
고은영 화원중 교사

기말고사 전날 종례를 마치고 저희 반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데 활발한 걸로 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아이 한 명의 두 어깨가 유난히도 슬퍼 보였습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없으니 괜찮다고 하던 아이는 어느새 "선생님, 있잖아요"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르 쏟아냅니다.

"제 미래의 모습이 너무 슬퍼요. 20년 뒤 저의 집은 아마 서울역이고, 제 이불은 신문지가 될 건데 어떡해요, 저?" 아이의 말인즉슨, 잠을 깨는 음료를 마셔가며 밤새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달리 잘하는 것도 없어 절망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와 한참 이야기를 한 뒤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자꾸 처음 그 한 마디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사회 속에서 자신감을 잃은 채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자아 정체성 혼란을 겪는 흔한 사례 중 하나일 뿐이겠지요. 하지만 아이가 표현한 방법이 참 놀랍지 않습니까?

제가 '오버'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런 표현 하나하나가 바로 아이들의 가능성, 잠재력을 교사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성인들이라면 그저 '막막하다'든가 '앞이 캄캄하다' 정도로 표현하겠지만 아이들이기에 저렇게 구체적인 비유를 사용하여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은 열심히 알에서 나오기 위해 껍질을 쪼아대는데 아직도 우리는 알이 큰지 작은지, 상품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데만 집중한다는 게 문제겠지요.

우리는 아이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이해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로는 'understand'가 있습니다. 제멋대로의 해석이지만 정말 상대를 이해하려면 그 마음속 깊은 아래(under)에 서서(stand)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comprehend', 'grasp', 'figure out'이란 단어도 있지요. 'prehend'와 'grasp'이 'seize'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얼마나 아이들의 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잘 헤아려 보아야(figure)하는지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쓰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그래, 우리 한 번 해 보자'라는 말보다는 '제발 좀 하지 마라'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습니다. 진도는 바쁘고 어떻게든 아이의 입에서 정답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다 보니 아이들의 재치 만점 농담들도 꼭 짜증을 섞어 무시하고, 아이들이 생각할 시간을 줄 여유도 없습니다. 차별하는 선생님이 제일 싫다고 말해왔으면서도 욕설을 쓴다는 이유로 '나쁜 아이'로 규정해버리고 저 아이의 장래가 밝지 않을 것이라 확신해버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데, 이런 우리가 과연 아이들을 탓하고 혼낼 자격이 있는 걸까요.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몹시 어렵지만 '이해하다'라는 말의 의미 그대로 아이의 마음 저 아래(under) 깊이 서서(stand), 아이들의 반응 하나하나를 놓치지 말고 꽉 잡아(comprehend), 잘 헤아려(figure)보면 되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부터 당장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부터 새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고은영 화원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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